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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by Oct 20. 2024

미슐랭이 인증한 베이징 짜장면 맛집

Fang zhuan chang no.69 in Beijing, 2024


중국음식이라고 하면 무엇이 생각나시나요?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 10명 중 9명은, 어쩌면 10명 모두 똑같은 음식을 이야기할 지도 모릅니다.

네, 생각하시는 그 음식. 짜장면입니다. 자장면이 맞느냐 짜장면이 맞느냐로 표준어 논쟁이 벌어질 만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죠. 옛날에는 졸업식 날은 으레 '짜장면 먹는 날'로 불리기도 했고, 먹을 것이 다양해진 오늘날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음식입니다.


하지만, 중국에는 없는 중국음식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인천의 차이나타운에서 만들어 진 일명 '한국식 중식'으로, 중국에는 없는 음식이라는 것이죠. 정말 중국에는 짜장면이 없을까요?


그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이 브런치북에서 첫 번째로 '짜장미엔'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는데요, 베이징에는 분명 수 많은 짜장면 가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국 본토에 짜장면이 없다는 말은 틀린 것이죠. 사실, 베이징 미슐랭 가이드에는 짜장면집이 빕 그루망 등급에 올라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에는 짜장면이 없다는 말은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분명 중국에는 '작장면', 중국 발음으로는 '짜장미엔'이 있습니다만, 막상 음식을 받아 보면 우리 머릿속에 있는 그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중국의 짜장면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이왕이면 제대로 먹어 보기 위해, 미슐랭이 선정한 짜장면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청나라 시절부터 베이징의 중심 상권 역할을 했던 곳이 있습니다. 자금성의 정문 앞에 형성된 전문대가, 일명 첸먼다제입니다.

우리나라도 광화문 앞으로 육조 거리가 형성된 것을 생각해 보면, 궁 앞으로 길게 상권이 형성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이 길은 황제가 궁에서 나와 천단으로 제사를 지내러 가기 위해 이용하던 길이었습니다. 황제가 다니던 길이니 궁에 바로 연결되어 이동하기 좋은 길이었겠죠. 그러다 보니 이 길에 궁에서 필요한 각종 물품을 공급하는 상점들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궁에 납품되는 물건은 각 지방에서 상인들이 가지고 올라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상인들을 상대하는 식당이나 숙박업소 등도 필요하게 되었지요. 첸먼다제에 베이징의 중심상권이 형성된 배경입니다.


사실 청나라가 쇠퇴하고, 자금성에 물건을 납품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 첸먼 상권은 쇠락했습니다. 그러나 베이징 올림픽 등을 앞두고 중국 정부에서 전통문화의 보존 겸, 도시 미관 개선 겸 해서 이 거리를 살려내기로 결정했고, 정부의 결정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중국의 특징 답게 이 거리가 과거 청나라 말기 시절의 모습으로 새롭게 단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곳은 오늘의 글과는 상관은 없지만, 아마 이 첸먼에서 가장 유명한 가게, 전취덕 본점입니다. 사실 이 곳을 가고 싶었는데, 브레이크 타임에 걸려 아쉽게 식사를 할 수 없었어요.




전취덕 대신 찾은 곳은 바로 이 곳, 일명 69호 짜장면집입니다. 본점(?)은 어딘가 훨씬 구석진 곳에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베이징 각지에 분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이 첸먼다제를 새롭게 재단장할 때 베이징의 역사적인 노포들을 유치했다고 하는데요, 이 짜장면집이 그렇게 역사가 길지는 않지만 짜장면 자체가 베이징의 명물 음식이기도 하고, 미슐랭 가이드에 선정된 집이기 때문에 이 첸먼에 가게를 낼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참고로 첸먼에는 전취덕 외에도 베이징 덕의 원조로 불리는 편의방이나 베이징 훠궈의 원조로 불리는 동래순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69호 짜장면집은 식사 시간이 아님에도 제법 긴 줄이 있었는데, 그만큼 유명한 곳이긴 한 것 같습니다. 과연 미슐랭 받은 짜장면은 어떤 맛일까요?

 


참고로 이 곳은 남라고항, 일명 난뤄구샹에 위치한 분점입니다. 사실 어지간한 우리나라 식당 못지않게 깔끔하고, 인테리어도 밝게 했습니다. 서울의 인사동과 같은 대표적 관광지인 난뤄구샹의 특성상 아마 대부분은 관광객이겠지만, 기다리는 손님들의 연령대도 굉장히 젊은 편입니다. 이 때는 식사시간 어간이라 대기줄이 굉장히 길었습니다. 사실 짜장면 외에도 다양한 메뉴를 판매하고 있는데요, 베이징 덕 토르티야(?) 같은 아무리 봐도 관광객을 타겟으로 한 다소 기이한 메뉴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른쪽 사진은 미슐랭 가이드 홈페이지에서 가져왔는데요, 아마도 본점 아닌가 싶습니다.



다시 첸먼으로 돌아와서, 식당 내부입니다. 우리나라의 가격대가 제법 있는 분식집 같은 느낌인데요, 사진으로 보니 어째 패스트푸드점 같은 느낌도 있습니다. 아까 살짝 언급한 것 처럼 짜장면 외에 그냥 베이징 덕이라던가 다른 면류 요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집의 명물인 짜장면을 주문하는 것 같았습니다. 당연스럽게(?) 자리에 있는 QR코드로 주문을 하면 되고, 짜장면도 몇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만 가장 기본적인 짜장면을 주문했습니다.


식당 내부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관리가 잘 되는 좀 비싼 분식집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느낌이 전달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중국 식당에서 주문하면 실패가 없는 오이무침입니다. 무침이라고 하기에는 사실 좀 애매하고, 살짝 말린 것처럼 겉면이 약간 쫄깃해진 오이를 새콤달콤한 간장 양념에 살짝 무치거나 절인 느낌입니다. 참기름 향도 나는데 향신료에 지친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 제격입니다. 그냥 먹어도 사실 맛있어요. 예전에 타이베이의 딘타이펑에서도 같은 메뉴를 먹은 기억이 있는데요, 실패가 없었습니다. 오른 쪽의 마늘절임은 이 식당의 시그니처라고 하는데요, 절인 마늘에 초록빛이 도는 것이 특징입니다. 아삭하면서도 마늘의 매운 맛이 강하지 않아 마치 피클 집어먹듯 먹기에 제격입니다. 두 반찬 모두 가볍고 상쾌한 맛과 식감을 가지고 있는데요, 짜장면과 먹기에 좋은 조합입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중식당에서 주는 노란 단무지는 너무 시고 달아 잘 먹지 않는 편인데, 너무 달지 않고 맛과 향이 살아있다는 점에서 이쪽이 더 마음에 듭니다.


타이베이 딘타이펑의 오이 무침. 이것도 정말 맛있다.






드디어 짜장면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뭔가 모양이 독특합니다.

가운데 있는 것이 바로 짜장입니다. 짜장은 마치 구절판 같은 접시에 담겨 나왔고, 다양한 야채가 같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짜장면은 야채를 짜장에 같이 넣고 끓이거나 볶지만, 베이징의 '짜장미엔'은 이렇게 장과 재료가 따로 준비되어 나옵니다. 대부분 생야채입니다.


장이 담긴 접시를 들어 올리면, 그 아래에 하나의 접시가 더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접시에도 다양한 야채들이 들어 있는데요, 정말 우리나라 구절판 같은 느낌입니다. 특이하게 아까 접시까지 해서 모두 두 종류의 콩이 들어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장을 제외하고 13가지 야채가 들어가는데요, 한편으로 보면 비빔밥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가장 아래에는 면이 들어 있습니다. 면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짜장면보다 좀 더 납작하고 하얀 색의 면입니다. 오른 쪽에는 천단공원 앞 작은 짜장면집의 짜장면인데요, 조명 때문에 조금 차이가 나 보이지만 면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다만 이렇게 보니 이 69호집의 짜장면이 다양한 야채를 준비하기 위해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갔겠다 싶습니다.



먹는 방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아까 접시에 예쁘게 담겨 있던 재료를 모두 이 면기에 넣고 적당히 비벼 먹으면 됩니다. 장에 물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짜장면보다 훨씬 마른 음식이 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기준에서는 간짜장과 같은 느낌인데요, 간짜장보다 더 물기가 없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해외에서 이렇게 생 야채를 먹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특히 어지간한 것은 다 빠르게 볶거나 살짝 데치기라도 하는 중식에서는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비주얼도 우리가 생각하는 짜장면과는 많이 다르고, 차라리 고추장을 넣기 전 비빔국수 같은 느낌 아닌가 싶습니다.


적당히 비비면 이런 느낌이 됩니다.

가장 궁금한 것은 역시 맛입니다. 지난 번 '짜장미엔' 집에 대해 적었던 것과 거의 비슷하면서도 좀 더 다양한 맛이 나는 짜장면입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하는 달달한 짜장의 향이 나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장의 양 자체가 훨씬 적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맛을 보면, 단 맛은 거의 없고 짠 맛이 강합니다. 보통 된장 맛이 생각난다는 후기가 많은데, 공감가는 표현입니다. 콩을 볶은 장이니 콩의 감칠맛도 느껴지고, 장의 은근한 짠 맛과 수분 대신 기름기가 면을 비빌 수 있게 합니다. 처음에 장을 넣기 전에, 장과 같이 나온 기름을 다 넣으면 너무 느끼하지 않겠나 싶었는데, 느끼하다거나 기름지다는 생각은 하기 어려웠습니다. 아마도 여러 가지 야채들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히려 기름을 넣지 않았다면 다소 뻑뻑했을 것 같아요.


미슐랭이 이 가게를 선정한 포인트를 추측해 보자면, 아마 이 다양한 생야채와 장의 조화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짜장면은 장 맛이 적당한 선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각각의 야채들이 그 맛과 식감을 잃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굳이 생 야채를 넣은 보람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예를 들면, 우리가 흔히 우리나라에서 접할 수 있는 짜장면은 짜장의 맛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위에 오이를 채썰어 얹어 놓아도 짜장을 비벼서 같이 먹으면 식감은 있을지언정 그 맛을 온전히 느끼기 어렵습니다. 만약 이 짜장면처럼 오이와 당근, 계란을 채썰거나 볶아서 넣었다고 해도, 이게 무슨 맛인지 느끼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짜장면은 장의 맛이 별로 강하지 않고 양도 많지 않기 때문에, 각각의 야채를 씹으면 나오는 채즙을 모두 느낄 수 있습니다. 굳이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야채를 채썰어 넣은 보람이 생기는 지점이죠. 그러다 보니 단순한 한 그릇의 비빔국수지만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음식 자체의 온도도 높지 않기 때문에 숨이 죽거나 익어버리지도 않았구요.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짜장면이 너무 기름지다고 생각해 먹고 나면 속이 부대낀다고 하는 분들이 먹으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짜장면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 기름지고 달달한 우리나라 짜장면 특유의 맛과 향을 기대한다면,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을 수 있는 음식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장이 과하게 달지도 않고, 모든 맛을 덮어버리는 느낌이 아니라 다양한 야채의 식감과 맛을 느낄 수 있어 비빔국수 형태의 요리로서 만족도가 높았던, 맛있었던 메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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