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g zhuan chang no.69 in Beijing, 2024
중국 식당에서 주문하면 실패가 없는 오이무침입니다. 무침이라고 하기에는 사실 좀 애매하고, 살짝 말린 것처럼 겉면이 약간 쫄깃해진 오이를 새콤달콤한 간장 양념에 살짝 무치거나 절인 느낌입니다. 참기름 향도 나는데 향신료에 지친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 제격입니다. 그냥 먹어도 사실 맛있어요. 예전에 타이베이의 딘타이펑에서도 같은 메뉴를 먹은 기억이 있는데요, 실패가 없었습니다. 오른 쪽의 마늘절임은 이 식당의 시그니처라고 하는데요, 절인 마늘에 초록빛이 도는 것이 특징입니다. 아삭하면서도 마늘의 매운 맛이 강하지 않아 마치 피클 집어먹듯 먹기에 제격입니다. 두 반찬 모두 가볍고 상쾌한 맛과 식감을 가지고 있는데요, 짜장면과 먹기에 좋은 조합입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중식당에서 주는 노란 단무지는 너무 시고 달아 잘 먹지 않는 편인데, 너무 달지 않고 맛과 향이 살아있다는 점에서 이쪽이 더 마음에 듭니다.
드디어 짜장면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뭔가 모양이 독특합니다.
가운데 있는 것이 바로 짜장입니다. 짜장은 마치 구절판 같은 접시에 담겨 나왔고, 다양한 야채가 같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짜장면은 야채를 짜장에 같이 넣고 끓이거나 볶지만, 베이징의 '짜장미엔'은 이렇게 장과 재료가 따로 준비되어 나옵니다. 대부분 생야채입니다.
장이 담긴 접시를 들어 올리면, 그 아래에 하나의 접시가 더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접시에도 다양한 야채들이 들어 있는데요, 정말 우리나라 구절판 같은 느낌입니다. 특이하게 아까 접시까지 해서 모두 두 종류의 콩이 들어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장을 제외하고 13가지 야채가 들어가는데요, 한편으로 보면 비빔밥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가장 아래에는 면이 들어 있습니다. 면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짜장면보다 좀 더 납작하고 하얀 색의 면입니다. 오른 쪽에는 천단공원 앞 작은 짜장면집의 짜장면인데요, 조명 때문에 조금 차이가 나 보이지만 면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다만 이렇게 보니 이 69호집의 짜장면이 다양한 야채를 준비하기 위해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갔겠다 싶습니다.
먹는 방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아까 접시에 예쁘게 담겨 있던 재료를 모두 이 면기에 넣고 적당히 비벼 먹으면 됩니다. 장에 물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짜장면보다 훨씬 마른 음식이 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기준에서는 간짜장과 같은 느낌인데요, 간짜장보다 더 물기가 없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해외에서 이렇게 생 야채를 먹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특히 어지간한 것은 다 빠르게 볶거나 살짝 데치기라도 하는 중식에서는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비주얼도 우리가 생각하는 짜장면과는 많이 다르고, 차라리 고추장을 넣기 전 비빔국수 같은 느낌 아닌가 싶습니다.
가장 궁금한 것은 역시 맛입니다. 지난 번 '짜장미엔' 집에 대해 적었던 것과 거의 비슷하면서도 좀 더 다양한 맛이 나는 짜장면입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하는 달달한 짜장의 향이 나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장의 양 자체가 훨씬 적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맛을 보면, 단 맛은 거의 없고 짠 맛이 강합니다. 보통 된장 맛이 생각난다는 후기가 많은데, 공감가는 표현입니다. 콩을 볶은 장이니 콩의 감칠맛도 느껴지고, 장의 은근한 짠 맛과 수분 대신 기름기가 면을 비빌 수 있게 합니다. 처음에 장을 넣기 전에, 장과 같이 나온 기름을 다 넣으면 너무 느끼하지 않겠나 싶었는데, 느끼하다거나 기름지다는 생각은 하기 어려웠습니다. 아마도 여러 가지 야채들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히려 기름을 넣지 않았다면 다소 뻑뻑했을 것 같아요.
미슐랭이 이 가게를 선정한 포인트를 추측해 보자면, 아마 이 다양한 생야채와 장의 조화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짜장면은 장 맛이 적당한 선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각각의 야채들이 그 맛과 식감을 잃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굳이 생 야채를 넣은 보람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예를 들면, 우리가 흔히 우리나라에서 접할 수 있는 짜장면은 짜장의 맛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위에 오이를 채썰어 얹어 놓아도 짜장을 비벼서 같이 먹으면 식감은 있을지언정 그 맛을 온전히 느끼기 어렵습니다. 만약 이 짜장면처럼 오이와 당근, 계란을 채썰거나 볶아서 넣었다고 해도, 이게 무슨 맛인지 느끼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짜장면은 장의 맛이 별로 강하지 않고 양도 많지 않기 때문에, 각각의 야채를 씹으면 나오는 채즙을 모두 느낄 수 있습니다. 굳이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야채를 채썰어 넣은 보람이 생기는 지점이죠. 그러다 보니 단순한 한 그릇의 비빔국수지만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음식 자체의 온도도 높지 않기 때문에 숨이 죽거나 익어버리지도 않았구요.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짜장면이 너무 기름지다고 생각해 먹고 나면 속이 부대낀다고 하는 분들이 먹으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짜장면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 기름지고 달달한 우리나라 짜장면 특유의 맛과 향을 기대한다면,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을 수 있는 음식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장이 과하게 달지도 않고, 모든 맛을 덮어버리는 느낌이 아니라 다양한 야채의 식감과 맛을 느낄 수 있어 비빔국수 형태의 요리로서 만족도가 높았던, 맛있었던 메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