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하 ━ 기록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주변 사람들한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그럼, 너 뭐 해 먹고살아?’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에게 돈이란, (밀접함을 넘어) 평생 끌어안고 가야 할 난제다. 미적 감각이 타고나거나, 애초에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면 예술을 업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뭐 해 먹고살아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지 않을까. 나 또한 그렇다. 글을, 그림을, 음악을 어떻게든 끌어안고 살아야지 결정한 순간부터, 나에겐 큰 결단이 필요했다. 내가 깨달은 가장 첫 번째 진리는, ‘좋아하는 하나를 위해 나머지 아홉 개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에세이 제목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예술이란 미지의 세계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었다.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작은 조각배 하나에 의지해 (나도 모를) 목적지를 향해 노를 저어야 하는 기분이었다. 그 조각배는 작고 연약해 실은 물건을 전부 버려야만 살 수 있었다. 가장 먼저 포기해야 할 것은 인간관계였다. 슬픈 현실은,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선 돈과 시간이 필요했다. 당시, 무지상태였던 나를 갈구는 데엔 24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돈은... 절약밖에 답이 없었다. 이후에 포기한 것들은 자잘한 수준이다. 여행, 주말, 나를 치장하는데 필요했던 웨스턴부츠, 페도라와 화장품 등등.
티셔츠 세 장, 검은색 추리닝 바지 두 장을 일주일 동안 돌려 입었다. 매일 앉아서 작업하니 살은 점점 찌고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나는 이 과정 동안 자신을 누르고, 버티며 하나둘씩 덜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두려운 건, 버려지는 것들이나 보이지 않는 목적지가 아니었다. 문제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현실의 파도였다. 경제적 어려움은 가뜩이나 가벼운 조각배를 마구잡이로 뒤흔들며 위협했다. 계속해서 노를 저어 나가려면 매 순간 찾아오는 위기를 빠져나가야만 했다.
버티고 누르는 것까지 나왔다. 그렇다면 빠져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예술이라는 장르 안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내 경우는, 음악과 그림이었다. 상업적 광고 음악을 만들고, 기업에서 원하는 캐릭터나 일러스트를 디자인해 납품하는 방식이었다.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외주를 딸 수 있는 루트가 다양하다. 이모티콘이 한창 유행일 땐, 회사에서 보유한 캐릭터를 움직여 이모티콘을 만드는 작업을 다수 진행했다. 이 외에도 드라마에 애니메이션 작업이 필요할 때, 외주 인력으로 들어가거나 공공기관 책자 삽화, 네 컷 만화, 앨범 커버 일러스트 등 포트폴리오만 잘 쌓아놓는다면 예술 범주 안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현재도 외주 작업은 지속하고 있다. 예술 활동이라 보기 어렵지만 버티는 방법 중 아직까지도 가장 큰 안정감을 얻고 있다.
이 분야에 발을 들이기 전에는, 예술가들이 마냥 멋지고 자유로워 보였다. 어딘가 예민한, 같은 시간과 공간을 함께 공유하고 있어도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같았다. 그들은 항상 무언갈 적거나 (한가해 보이는데) 늘 정신없이 살았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일정 시간 직장에 묶여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을 엄청 많이 버는 거 같지도 않은데 왜 그들은 항상 바빠 보일까. 그건 바쁜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 바쁜 거다. 이젠 주변 지인들도 나에게 묻는다. 넌 뭘 하길래 그렇게 바쁘냐고.
예술을 하려면 가난해야 한다는 말은 현시대와 동떨어진 이야기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일단 살아야 한다는 게 전제로 깔린다. 일단 살고 봐야 예술이든, 뭐든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내야 한다. 그 과정이 마냥 아름답고 숭고하지만은 않더라도.
예술은 단순히 무언가를 창작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그러면 안 된다. 앞서 말했듯, 돈도 벌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기획, 마케팅, 협업, 작업, 생각, 연구, 발표 등, 이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했다. 24시간이 매일 부족했다. 음악과 그림을 중점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가 글까지 확장하니 일은 두 배가 아닌, 제곱이 됐다. 물론 괴롭기도 하지만, 과정 속에서 충만함을 느끼며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아마 예술을 하는 모두가 이 원동력으로 지속할 힘을 얻고 있지 않을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왜 굳이 그런 힘든 길을 걷지?’ 이 질문에 대답할 거창한 이유는 없다. 그냥 하는 것. 나에게 예술은 쉬운 길이 아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 아니 평생 그럴 것이라 확신한다. 그럼에도 해야 하는 이유는 말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 아닐까. 더 근본적으로 접근하면, 나는 기록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저 일기장에 쓰일만한 개인의 스토리가 아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대와 사회를 기록하고 싶다. 이 마음을 버티기, 누르기, 빠져나오기의 기본적 바탕으로 삼고 있다.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예술을 선택하게 했고, 예술을 하기 위해 버티고, 누르고, 빠져나온다. 이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분명 피곤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견디는 과정이 위로가 되는 지점을 누군가와 공유하기 위해 기록하려 한다. 사실 꼭 예술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버티고, 누르고, 빠져나오길 반복하고 있다. 숭고한 정신으로 예술을 지속해야 함은 맞지만, 예술이 아니라고 해서 숭고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루를 잘 살아가는 우리 모두 예술의 어느 지점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예술을 통해 살아갈 힘을 얻기도, 그 속에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예술은 나에게 제2의 인생을 열어주었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이십 대 초반이었던 나는 개인이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 따위의 것들을, 말이 아닌 어떠한 도구를 이용해서 표현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이 미적으로 아름다워야 함은 기본값. 이를 위해서 개인의 기술과 표현 방법을 개발해 발표해야 한다고 여겼다. 즉, 결과로써 보여줘야 하는 것.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내가 바라보는 예술은 ‘태도’에 가깝다.
굳이 먼 길을 돌아 처음부터 되짚어보는 것, 애써 들여다보는 것, 현시대를 반영해 해석하고 실험하는 것.
이 고된 과정 전부가 예술이라 생각한다. 앞서 ‘고된 과정’이라 표현했지만, 절대 과장된 표현이 아님을 말하고 싶다. 창작의 고통이라는 말을 흔히들 사용하지만, 오히려 그것보다 그 외적인, 나름의 고충과 고난이 매일 반복된다. 나는 에세이를 통해, 고된 과정에서 어떻게 버티고, 누르고, 빠져나오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낮에 일을 하고, 저녁엔 집으로 돌아와 새벽 늦은 시간까지 개인 작업을 한다. 이 시간 속에서 나는 매일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 일을 지속하기 위해 포기하는 것들과 감당해야 할 것들이 버겁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럼에도 일단 하고 보는 것. 그 단순하고 명료한 다짐이 예술 안에서 ‘버티기, 누르기, 빠져나오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