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혐오에서 벗어나기

하영하 ━ 기록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by ㅎ과ㅇ

‘왜 그렇게 생각해?’. ‘그런 선택을 한 목적이 뭐야?’


이유와 목적을 묻는 말 앞에서 자주 말문이 막혔다. 평소에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는 주제 앞에선 더 그랬다. 그럼 ‘그냥’이라고 답했다. 피곤하고 귀찮으니까. 나는 생각을 귀찮아하던 사람이었다. 쉽게 생각하고, 느껴지는 대로 말하고 행동했다. 그렇게 살면 편하긴 하다. 지금은 ‘그냥’이라는 말을 되도록 피하려고 한다. 성의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 창작자로 살고부터는 모든 것에 이유와 목적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난 그걸 계속 외면하고 살아온 것이고. 예술하고 싶으니 뭐라도 좀 알려달라 무턱대고 찾아온 나에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근본적인 문제부터 뜯어고쳐라.’ 그 문제란, 모든 일을 쉽게 생각하고, 조금만 힘들어질 것 같으면 회피해 버리는 성격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전까지 내가 회피형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전에 나는 기회, 사람, 인생에 몇 안 되는 행운을 허무하게 놓치는 일이 많았다. 고질병과 같은 회피 성향은 ‘진짜’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자꾸만 주저하게 했다. 스스로 까다로운 사람이라 생각했지, 직면과 돌파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예체능 분야를 선택한 이유도 단순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고 그들의 자유로운 삶을 선망했다. 무지한 상태가 가장 용감하다고. 주변에 예술가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그의 삶을 보고 주저했을 것이다.


나를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부터 자기혐오에 빠졌다. 나는 왜 이리도 멍청하고 이것밖에 생각하지 못할까. 나 같은 사람은 예술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 결국 특별한 사람에게만 자격이 부여되는 거야. 회피하는 나쁜 버릇이 도진 것이다. 예술 앞에서 나는 매일 무너졌다. 남들과 비교하며 연민에 사로잡혔고, 스스로 짓눌렀다. 나는 결국 3년 만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오랜 기간 도와주었던 선생님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곧바로 직장을 구했다. 그동안 쌓아온 작업물이 포트폴리오가 되어 생각보다 기회는 쉽게 열렸다. 작업실이 아닌, 사무실에서 주 5일, 하루에 8시간을 근무했다. 작업을 하고 있을 당시엔 주 7일, 퇴근은 사치였다. 오히려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장에 찍힌 월급을 볼 때 ‘그래도 이게 낫지’하는 생각도 잠시뿐. 매일 도태되는 기분이었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해 꾸준히 작업물을 쌓아 올리는 작가들을 보며 불안해했다. 나도 무언갈 만들고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자격이 없다며 스스로 판단하고 포기한 내가 한심했다. 나는 한 달 만에 직장을 관두고 다시 창작자로 돌아왔다.


곧바로, 선생님에게 SOS를 쳤다.


‘창작을 지속할 방법이 뭘까요.’

‘회피하는 버릇부터 고치고,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훈련을 해 봐.’

‘예? 그거 대체 어떻게 하는 건데요.’


선생님은 자기 객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장장 4시간을 쉬지 않고 설명해 주셨다. 그때는 선생님의 말이 추상적으로 다가왔다. ‘나조차 나를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오히려 더 심각한 자기혐오에 빠지는 거 아니야?’ 해보기도 전에 덜컥 겁이 났다. 작업실을 떠난 전력이 있어 또다시 주저함이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물러날 곳은 없었다. 이것마저 회피하면 영영 예술계에 발을 들일 수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것만 같았다.


이후로 객관화에 관해 연구하고 내 삶에 적용해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선생님의 조언은 정말 효과가 있었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 예술과 창작을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지속하는 힘의 원천을 찾는 방법은 다양할 것이다.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방법이 나에게 잘 맞았을 뿐이지 모두에게 적용되리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고 단정 짓지 말았으면 좋겠다. 창작의 지속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 중인 사람이 있다면 자기 객관화를 해보는 걸 추천해 주고 싶다.


서두로 내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솔직함으로 언급해 보자면,

1. 이성보다 감정이 앞선다.
2. 잘하고 싶은 욕심은 많지만 게으르다.
3. 귀가 얇다.
4. 완벽주의 성향이 강하다.
5.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질 못한다.

이것부터가 객관화의 시작이었다. 내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 제삼자의 눈으로 나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불현듯 티브이에 나오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 떠 올렸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일상을 틈틈이 촬영했다. 카메라가 의식돼 평소 모습이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지만, 그것도 오래 가야 3일이었다. 카메라를 통해 나도 몰랐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할 때, 시작 전에 꼭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해보지도 않고서 못 할 거 같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었다. 그리고 틈만 나면 자꾸 침대에 누웠다. 이때 자각했다. 실력이나 재능이 아니라 태도 문제였구나. 창작하고 있음에도 지속하지 못했던 이유가 태도에서 왔음을 깨달았다. 이는 객관화를 통해 자각할 수 있었다.


작업에 방해가 되는 패턴과 말을 인식할 때마다 틈틈이 기록했다. 쉴 때도 눕지 않고 최대한 앉아 있으려 했다. 잠자는 시간을 줄이려 애쓰고(이건 아직도 노력 중이다...), 자꾸만 붕 뜨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수시로 나의 에너지 상태를 확인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감정을 빼고 냉정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문제를 인식하는 것부터 출발인 셈이다. 그 이후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해결해 주었다. 작은 것부터 서서히 바꿔나가기 시작하니 언제부턴가 걸림돌이 되던 말과 행동을 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하루에 8시간 이상 앉아서 집중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하루에 4시간만 자도 일상생활을 소화하는 데 무리가 없어졌고, 작업에 대해 좋지 않은 피드백을 듣더라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오히려 객관적인 피드백을 주는 사람들이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객관화는 나를 누르고 있던 ‘나’에게서 빠져나올 수 있게 했다.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방어기제로 근본적인 문제를 회피했다. 그러다 정작 피해를 보는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환경 탓, 사람 탓은 비겁한 변경이었을 뿐, 원인을 나에게 두니 오히려 쉽게 풀렸다.


나에게 ‘버티고, 누르고, 빠져나오기’란, 나아갈 방법을 제삼자의 나와 도모하는 것이다. 더는 남들과 비교하며 무너질 필요가 없다. 스스로에게 자격을 운운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완벽한 결과를 기준 삼지 않고, 행위에 집중했다. 객관적으로 최선을 다했는가만 스스로 점검했다. ‘누가 보더라도 최선을 다했다고 인정할 만큼 했어?’ 매 작업 때마다 나에게 질문했다. 아니라는 판단이 들면, 더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하는 일에 진심이고,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서 오는 자신감은 나를 단단하게 해 주었다. 태도만이 지속할 힘을 주었다. 화려하고 멋진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 속의 내가 어떻게 고민하며 흔들렸는지가 포기하지 않도록 붙잡는 방법이었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의심이 든다면, 스스로 점검해 보자!


객관적인 내 상태는 어떠한지, 열의 열 명이 인정할만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혹시 감정적으로 일을 대하고 있진 않은지 따위의 것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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