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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in Jun 18. 2021

날것과 정제된 경험의 조화

잠시의 자유와 일탈,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

요즘과 같이 답답한 시기가 있었을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한 위기가 있었겠지만, 모든 사람들은 바로 지금, 현재를 살아가기에 요즘이 가장 힘들고 어렵고 답답한 시대라고 느낄 것 같다.


코로나로 촉발된 ‘강제 격리의 시대’가 1년 넘게 지나오면서 많은 사람들의 공간을 이탈할 수 있는 자유가 사라지게 되었다. 여행산업이 어려워짐은 물론이고, 한편으로는 개인의 아이덴터티 마저 혼돈에 빠지면서 삶의 모든 면에서 우울과 불안의 그림자가 엄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것에 대한 치료는 아마도 여행이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텐데, 자발적인 공간 이동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답답한 일상 생활의 돌파구가 없다는 것이 더욱 모두를 지치게 만든다.


누군가 우리에게 여행의 이유를 묻는다면


김영하 작가의 책은 나에게 있어 의심 없이 선택할 수 있는 많지 않은 책들 중 하나다. 소설과 수필을 넘나들며 보여주는 인생과 사람에 대한 철학적 시선은 물론이고, 우리가 미처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장소에 대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정확히 말하면, 같은 곳을 여행했다 하더라도 미천한 언어로 인해 표현하지 못하고 알면서도 이해하지 못한 것들을 슬그머니 끄집어 내 ‘맛깔나게’ 그려준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작가의 책, 그 중에서도 여행 에세이는 나로 하여금 어디론가 떠나고 싶게 만드는 자극제가 되어 왔다.


작가처럼 많은 곳을 여행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나에게 있어 여행은 마음 속에 무언가 요동칠 때 서슴없이 선택한 현실 도피의 가장 확실하고 완벽한 수단이었다. 작가의 말대로 어느 시점까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왔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생각은 가끔이나마 홀로 여행을 다니면서 조금씩 바뀌게 되었고, 지금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기 때문"이 되었다. ‘집이 있기 때문에 여행이 좋다?’ 어떻게 보면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이 말은 현재의 나에게 있어 여행을 맛과 의미를 정확하게 표현해 주는 말임은 분명하다. 책 속에 등장하는 마사이 족장의 아들처럼, 작가의 오랜 뉴욕 생활처럼, 아무도 아닌 'Nobody'로 살아가지 않고 누군가로부터 '환대'를 받고 받아들여져 여행지에 정착한다면, 그것은 여행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터전을 만드는 것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은 숙명적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떠돌이’, 또는 '호모 비야토르(Homo Viator)'로 설명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돌아가지 못하면 여행이 아니라 ‘거주’의 문제로 치환되기 때문이다. 일상으로부터 ‘탈출’이 아닌 일상에서의 문제를 떠안는 형국이랄까?


여행이란 날것과 정제된 경험의 교차


여행이란 '날것의 경험과 정제된 경험의 교차' 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한다. 지금과 같은 이동의 자유가 불허된 상황만 아니었다면, 여행을 표현할 때 조금 더 ‘직접 경험’에 무게 중심을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가 위기 인만큼 누군가를 통한 ‘간접 경험’에서 느끼고, 상상하는 맛도 상당히 좋다는 것을 점점 더 깨닫게 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작가가 출연한 '알고 나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1,2,3'은 물론이고,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꽃보다 청춘' 등의 여행 예능과 국내 여행의 참 맛을 알게 된 '1박 2일'까지, 늦게나마 여행과 관련된 프로그램은 거의 놓치지 않고 섭렵하였다. 물론 간접 경험을 하고 나서 직접 행동으로 옮긴 적도 많기에, 여행이란 꼭 직접 경험한 것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여행 바라보면서 느껴보는 것도 꽤 좋은 방법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시선을 제3자의 눈으로 바라 볼 수 있는 '방구석 여행자'로서 시각 확대의 묘미를 알게 된 것이기도 하다.


인생은 여행? 여행은 인생의 일부!


인생을 여행이라고 했던가? 우리의 인생이 좀더 풍요로워 질 수 있도록, 나의 시각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그리고 마음의 치유를 통해 조금 더 나은 미래를 맞이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행은 삶의 궤도에서의 해방이 아니라, 인생의 한 부분으로서 존재론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보면 볼 수록 현재를 이탈하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는 책. 둘러보는 관광이 아닌, 떠돌이로서 누군가의 삶을 지그시 관조할 수 있는 책. 마지막으로 항상 제자리로 돌아오고 싶게 하는 책. 그런 김영하 작가의 책을 읽으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다시 여행길에 오르는 나를 그려보며 행복한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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