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이해하는 법과 생활, 홍성수의 <법의 이유>
오래 전 이야기이지만, 대학을 다닐 때 법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전공과는 무관하게 법전을 읽고 법학 수업을 청강하고, 심지어는 고시를 위해 법학 공부를 꽤 오랫동안 한 적도 있다. 그 때 무엇이 나를 법에 이끌리게 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서, 그리고 나를 보호하기 위한 최적의 수단으로서 법을 이해했던 것 같다. 그리고 법 조문의 구성에서 느낀 논리성과 수학에 버금갈 만한 연계성과 응용성 등은 학생시절 나를 법에 잠깐이라도 빠지게 했던 또 하나의 요인이었다.
지금이야 이전과 같은 불타는(?) 정의감에 사로잡혀 법을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사회생활을 오래하고 나이가 들어갈 수록 법이 얼마나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인간과의 관계가 늘어날 수록 법은 우리 생활과 더욱 긴밀하게 상호작용 하고 있다. 다양한 권리관계를 규정하는 계약서를 쓰고, 금전거래를 하고, 직장에서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과 같은 사적인 활동에서 국가로 부터 어떤 행정적 처분을 받거나 미디어를 통해 알게된 범죄에 분노하고 과거 국가의 권력으로 인해 희생당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행위까지... 우리는 원하던 또는 원하지 않던 간에 생활 구석구석에서 법과 같이 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이 생활을 바라보는 관점과 일반인이 법에게 기대하는 심리적인 그것과 차이가 있어 가끔씩 당황스러움을 느끼는 건 나만의 일은 아닌 것 같다.
법에 의해 영향받는 우리의 세상사 - 영화이야기
그런 의미에서, 홍성수 법학 교수의 '법의 이해'는 우리 생활 속 법을 이해하는 좋은 컨텐츠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모두가 많이 접하는 영화속에서 법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 영화 속 사건을 실제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지를 하나하나씩 이해하는 과정은 단순한 법전을 찾아 읽고 법률가와 상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몰입도를 가지게 해 준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법 상식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획득 되었고,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그리고 작은 법 조항 하나하나가 사람들로부터 잘못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지를 확인하는 과정은 영화 속 한 장면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만큼의 재미가 있다.
이 책은 2009년 용산참사를 영화로 다룬 <소수의견>을 통해 과연 법정에서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그러면서 제도적 보완장치인 국민 참여재판의 의미를 이해하게 하고, 2012년 실제 석궁사건을 모티브로 한 <부러진 화살>을 통해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법개혁의 출발이 사법 불신으로 부터 오게 된 근원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국내 영화 뿐만 아니라, 2006년 일본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를 통해서는 국가권력이 개인의 신체를 어떻게 억압해 왔으며 개인의 자유권 보장을 위해 마련된 보완책으로 여러가지 법적 장치를 설명하며 우리의 법 이해 영역을 넓혀 준다. 때로는 우리가 재미있게 보아 넘겼던 많은 형사 영화들이 실제로는 개인의 자유를 심각히 침해할 수도 있다는 새로운 시각도 알게해 주고, <데드 맨 워킹>, <데이비드 게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집행자> 등 몇 개의 영화를 통해 징역이나 사형과 같은 징벌적 법집행이 얼마나 신중하게 이뤄져야 하는지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준다.
특히 나에게 흥미로왔던 것은 '법과 도덕'의 딜레마에 관한 부분인데, 법과 도덕 모두 사회의 정의나 개인의 권리를 반영하기 위한 사회적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방향성으로 우리는 가끔 법 논리로 도덕을 보기도 하고, 도덕과 법을 혼용해서 바라보기도 한다. 일반 시민의 법의식과 법률가들의 법 해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바로 이런 법과 도덕의 관점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사회적 정의와 개인적 양심이 가장 중요한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만큼, 가장 나의 현재에 몰입하여 읽은 부분이기도 했다. 과거 읽었던 '마이클 샐던'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내용을 되새기면서 과연 정의를 실현하는데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숙제를 던져 주기도 했다.
영화, 우리에게 던져주는 두 가지 역할들
어렸을 때 보았던 호기심으로 접했던 남성 잡지 '허슬러'의 발간자인 '래리 플린트'의 소송 사건을 다룬 영화 <래리 플린트 ; 원제 The People vs Larry Flynt>는 도덕과 법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관점의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있으나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은 예술의 자유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논의와 같은 선상에 놓여있다. 유교적 색채가 강한 우리나라의 경우 올바른 것과 그렇지 못한것으로 바라보지만, '법은 권리를 침해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는 서양적 사고방식은 <래리플린트>가 이전 故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가 음란물 판정을 받으며 '건전한 성적 풍속이나 성도덕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형법규정에 의하여 처벌할 수 있다'며 대법원에서 유죄판정을 내린 사건과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만약 지금 이 사건이 공론화 되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비교장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더카트>로 보여준 노동자의 권리 문제는, 우리가 노동자로 겪을 수 있는 일상의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법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 주고,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로 보여주는 '장애인의 권리' 문제는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고발한 영화로도 가치가 있지만, 우리의 의도하지 않은 행동들, 또는 의도적으로 베푸는 행동들이 '장애'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에서 어떻게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는지를 현재 시점에서 판단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마지막으로 영화가 법을 이해하고 사회를 고발하는 훌륭한 예술적 전달 방법이지만, 영화 자체의 파괴력으로 인해 영화가 또하나의 '혐오'을 조장하는 시각을 만들 수 있다는 위험성을 영화 <청년경찰>과 <범죄도시>를 예로 들며 설명한다. 저자 스스로도 '중국 동포 = 위험인물' 이라는 내재 의식 속에 험오가 들어앉아 있는지,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합리적 이성을 마비시켜 왔는지를 설명한다. 그래서 영화를 법을 이해하는 재미있는 컨텐츠로만 보지 않고 객관적 시각을 가지게 해주는 역할로서의 영화의 책임성도 공감하게 만드는 것은 이 책이 가지는 큰 장점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우리 사회의 다문화 문제를 바라보면서 영화 속에서 만들어진 색안경들이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를 무시한 채 국민이 아니냐 맞느냐의 소속으로만 판단하며너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또 하나의 편견과 차별을 양산하고 있음을 점점 더 심하게 느끼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 책은 '영화로 이해하는 시민의 교양'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교양. 교양의 뜻으로 보아서는 우리가 알아야 하는, 또는 알면 유용한 지식의 범주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식의 범주에 포함되는 내용을 우리 주변의 이야기, 영화로 풀어내며 소개하는 것은 지식을 재미요소와 함께 전달하는 저자의 노하우로 이해해도 무방할 듯.
하지만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하는 것은, 법은 결코 자체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의해 존재한다는 것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더 알아야 하고 문제가 되어야 하는 부분은 고쳐야 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런지...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적인 삶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법이 존재하는 것이기에 법이 모든 것에 군림할 필요도 없고 법이 대중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만, 법조인과 일반인이 가지는 관점에 관한 간극은 조금씩 줄일 필요가 있지 않겠냐는 다소 희망적인 말을 내뱉어 본다.
책을 덮으며 다시 리뷰해 봐야 할 영화 목록를 얻은 것도 이 책이 주는 선물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