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자들과의 실내

내 마음의 이상 #9

by 직장인 B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 이상, 오감도 '시제일호' -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직장 생활엔 공포가 서려있다. 그것이 직장에서 생겨난 것인지, 생활에서 생겨난 것인지는 모르겠다. 직장 생활엔 공포가 서려있다. 이 공포는 퍽 생생하여 생각을 멈추기도 하고, 분주했던 손을 둔하게 만들기도 하고 심지어는 발걸음을 붙잡기도 한다. 나의 경우를 말할 것 같으면 생판 대낮의 건물 복도에서 신호등처럼 멈춰 선 채 눈만 뻐끔거리기도 하였다. 동료의 경우를 말할 것 같으면 매일 오후 세시 즈음 화장실이든 건물 바깥이든 나가 혼자만의 공간에서 그야말로 숨어있는다고 한다. 그렇게 공포가 규칙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공포는 난데없는 구석이 있다. 무튼.


컴컴한 밤, 방에 불을 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순간은 괜히 무섭고 오싹하다. 방이 아닌 폐가나 버려진 정신병동 같은 경우엔 불을 켜 무너진 실물을 보았을 때 비로소 공포가 찾아온다. 이로 보아 공포란 건 시야가 확보되냐 마냐로 판별되는 문제가 아니다. 실로 공포란 낯선 존재가 나를 덮치거나 좁은 공간에 나란히 있다는 느낌에서 비롯된다. 암흑 속의 귀신이나 폐가의 이빨 빠진 인형 같은. 그런 존재의 존재감이 생각과 손과 발을 멈추게 하고 오직 공포스러운 느낌만을 활개 치게 한다. 직장 생활에도 그런 공포스러운 순간이 있다. 직장은 불 꺼진 방인 걸까 불이 환한 폐가인 걸까.


하나의 기억이 있다.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회식으로 가게를 찾은 팀이 있었다. 사십 대가량의 아저씨가 주문을 했었는데 주문이 마무리될 무렵 가장 높은 직급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와인 주문을 요구했다. 주문하는 아저씨에게 와인 종류를 알아서 고르라고 했는데 아저씨는 내가 펼쳐 든 와인 메뉴판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멈추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로서도 상황을 모면할 길이 마땅치 않아 아저씨와 다르지 않게 멈추어버렸다. 우리는 예상치 못한 올가미에 걸려버린 듯 공포에 휩싸였다. 그때 아저씨의 눈에 비치던 새까만 암흑을 난 잊지 못한다.


내가 신호등처럼 멈추어 섰을 때의 일이다. 그때 즈음 팀의 업무가 널널하여 매일같이 사원들끼리 커피 타임을 하곤 했었다. 우리가 친구처럼 잘 어울렸다는 소문이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진동벨이 울리면 나는 벨을 들고일어나 커피를 받아왔다. 그날도였다. 쟁반을 들고 돌아오는 길에 오순도순 이야기를 하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자 마음에 노란불이 켜지더니 발이 멈추었다. 사원끼리의 커피 타임 때 한 번의 예외 없이 내가 커피를 받아왔던 것이었다. 시중 노릇 하는 나를 신경도 안 쓴 채 마냥 화목한 동료들의 모습이 갑자기 낯설었고 그게 너무 공포스러웠다. 환한 카페가 그렇게도 서늘했다.


이상의 오감도 속 아이들은 어디론가 질주한다. 그 마음이 내겐 절절하다. 공포로 몸이 멈춰진 다음엔 어디로든 질주하고 싶어 진다. 직장에 있다 보면 누군가 멈춰 선 모습보다는 질주하는 모습을 더욱 쉽게 발견하게 된다. 한 번은 가까운 자리에 있던 과장님이 갑자기 책상을 소리 나게 치더니 머리를 쓸어 넘기며 밖으로 나가는 걸 보았다. 사정을 알고 보니 협력 부서의 사람이 대놓고 메신저를 씹고 연락을 회피했던 것이었다. 분노는 공포심의 가장 극적인 표현이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과장님의 얼굴은 낯선 것을 마주한 듯 모든 구멍이 열려있었다. 희한한 건 과장님과 협력 부서의 사람은 평소에 아주 잘 지내던 사이었었다는 점이다.


직장인 누구나 이 공포감과 무관하지 않다. 낯선 동료가 몇 개월을 같이 일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고, 한없이 친근했던 동료가 한순간에 낯설어지는 곳이 직장이다. 그 낯섦이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건 정말이지 공포다. 좋아해서 따르던 선배가 어느 날 불법 업소에 갔던 이야기를 했고 난 차마 시선을 맞출 수 없어 눈을 꼭 감았다. 그때 암흑 속에서 느껴지던 낯선 존재감이 너무 위협적이었다. 팀원들이 나만 빼놓고 뿔뿔이 점심을 먹으러 간 날도 그에 못지않게 낯설었다. 이런 낯섦은 너무나 비일비재하고 또 다양하게 발생하여 누구도 예외 없이 꼭 그 상황에 처한다. 직장인 누구도 이 낯섦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쩌면 이 낯섦은 비단 직장뿐 아니라 인간의 삶 그 자체에서 발생되는 것일지 모르겠다. 실제로 아까 언급한 아르바이트 시절의 상황에서 난처한 마음에 가장 높은 직급으로 보이는 아저씨에게 와인을 골라달라고 요청하자 그분도 우리와 다를 바 없이 멈춰 선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우두머리 아저씨를 멈춰 세운 건 분명 모종의 공포였지만 그게 직장의 것은 아니었다. 공포스러운 낯섦은 삶의 어느 곳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직장 생활의 공포는 '직장'보다는 '생활'에 더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직장에서의 공포가 다른 어느 곳에서의 공포보다도 더 생생하다는 점이다.


더욱이 중요한 건 직장에서의 공포가 직급에 따라 흘러 낮은 자리에만 고이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누구든 낯설어질 수 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낯선 공포를 심어줄 수 있다. 작업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과장님을 자리로 불렀을 때 지나가던 과장님은 덫에 걸린 마냥 멈춰 섰다. 요즈음 MZ 세대의 당돌한 풍습과 태도에 윗 세대 직장인들이 꾀 곤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신문에 왕왕 나오는 윗세대들의 토로에 묻어있는 짙은 공포감을 난 느낀다. 직장이라는 요상한 곳에선 누구나 무서운 놈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무서운 사람들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모여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이 비좁은 공포를 참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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