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이상 # 10
나에 대해 달력의 숫자는 차츰차츰 줄어든다
- 이상, 각혈의 아침 -
내 자취방에는 함께 살기 불편한 두 존재가 있다. 몸무게와 달력이 그것들이다. 둘은 모두 숫자로 무언가를 표시한다는 점에서 똑같고, 내가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걸 알려준다는 점에서도 똑같다. 종종 어른들이 나이가 드니 뱃살이 붙고 살이 찐다고 했을 때 난 콧방귀를 뀌고 웃음을 참았었다. 운동 안하고 막 먹고 자기 관리를 하지 않은 걸 나이 탓으로 돌리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 어리석었던 콧방귀들을 반성한다. 쳐지는 살, 부푸는 뱃살, 늘어나는 몸무게는 단연 나이와 상관있다. 삼겹살이나 탄수화물을 먹어야만 살이 찌는 것이 아니었고 나이를 먹어서도 살이 쪘다. 내가 관리를 땀나게해도 몸무게는 주름처럼 늘어났다. 그렇기에 점점 내 무게를 힘들어하는 몸무게를 보면 나이가 들었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고 그게 참 불편했다.
하물며 몸무게가 이런데 달력은 어떻겠는가. 은글슬쩍 노화를 실감시키는 몸무게완 달리 달력은 정직하고 가차 없이 세월이 흐르는걸 알려준다. 가령 이런 식이다. 우리 회사는 연말 즈음이면 차후년도 달력을 준다. 작년 우연찮게 첫 눈과 함께 2021년도 달력을 받았었다. 그 때 달력은 오래가는 천만 볼트 건전지처럼 도무지 어떻게해도 닳지 않을 물건으로 느껴졌었다. 그랬던 달력이 어느새 반이 쓰이더니 남은 반의 반이 또 쓰이고 그로부터 3주가 더 지났다. 이 바람같았던 3주를 네 번 더 지나면 달력은 쓰레기가 된다. 올해 달력은 더욱 가혹했던 것이, 내년이면 두려운 아홉 수 스물 아홉이 되기 때문이다. 아홉 수의 액운을 어찌어찌 잘 막아낸다고해도 그 결과로 얻는 건 서른이라는 나이뿐이다. 내년의 달력은 참 더 불편하겠다.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 댁엔 커다란 종이 달력이 있다. 열두개의 종이로 묶여진 달력은 꼭 한달마다 하나씩 뜯겼다. 뜯겨진 달력은 더이상 달력이 아닌 한낱 종이가 되어 불쏘시개로 쓰이거나 튀김을 담는 기름종이로 쓰였다. 나이를 먹는다라는 표현의 이상스러움은 나이를 먹는 일이 주는 느낌은 꼭 무언가를 잃어가는 쪽에 가깝다는 점이다. 다달이 뜯겨지는 달력처럼 말이다. 물론 시간의 흐름은 무언가를 주면서 동시에 뺏는다. 살과 주름을 주고 체력과 점프력을 뺏는다. 좋은 쪽으론 경력과 여유를 주고 미래의 불확실함과 현재의 앳된 불안을 뺏는다. 얻는 것들을 다 합치고 잃는 것들을 다 합쳐서 둘의 총량을 비교해볼 수는 없겠다. 그건 딱히 의미도 없다. 다만 스크린에 비친 흘러간 세월을 감상한 나의 한 줄평엔 잃어버린 무언가가 쓰이겠다.
나뿐만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 회사 동료들은 예외 없이 나이 먹는걸 아쉬워한다. 송년회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는 '벌써'다. 송년회란 벌써 일년이 갔네. 벌써 마흔이네. 라는 말을 허물없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모임이다. 평소의 모임에서 그런 말을 했다간 질책을 받을 수 있지만 송년회에선 허락되고 한편으론 권장된다. 나이를 먹어가는 아쉬움, 점점 무언가를 잃어가는 듯한 기분은 8월내지 9월 즈음부터 속에들 감춰지고 있다가 그날 해방된다. 너도 나이를 먹었구나 나도 먹었어. 너도 무언가를 잃었구나 나도 비슷한 걸 잃었어. 라는 교감으로 서로를 위로한다. 전국민이 코로나를 앓았던 올해는 유난히 시간이 빨랐고 꼭 그만큼 무언가를 더 잃은 기분이다. 난 이 기분을 꾹꾹 눌러가며 올해의 송년회를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다른 팀 어느 직원 분의 책상을 보았는데 책상 위 놓여진 달력엔 꼼꼼하게 하나씩의 X 표가 쳐져있었다. 그 모습에서 왠지 모를 멜랑꼴리함을 느꼈다. 그 분이 시간에 대해 갖는 감정이 두려움인지 대담함인지 다른 무엇인지는 가늠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나 또한 집에 있는 달력에 빗금을 치기 시작했다. 나의 감정은 두려움도 대담함도 아니었다. 세월의 흐름에 대해 가지는 거창한 신념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매일매일 운동을 하자는 혼자만의 목표를 잘 지키고 있는지를 표시하기 위해서였다. 난 내가 그은 빗금에서도 묘한 멜랑꼴리함을 느꼈는데 그건 단지 하루내지 이틀에 걸려 빗금 없는 공백이 생기는 것에 대한 소회였다. 그 후 운동은 이어서 했지만 달력에 빗금은 긋지 않았다.
이제 살면서 몇 개의 달력을 더 가질 수 있을까라고 물었을 때 그 수를 가늠할 수 없지만 마지노선은 정할 수 있다. 대범하게 80개를 마지노선으로 잡자면 그것으로 내 남은 날의 최대치가 추려진다. 조리뽕을 뜯어서 나온 알의 갯수가 내 남은 날보다 많을지 모르겠다. 어쨋든 난 내 삶에 부어진 나날을 주워먹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달력에 하루하루 빗금을 치던 어느 동료분처럼 말이다. 이렇게 따지면 나이를 먹는다는 표현과 나이를 먹어감에 무언가를 잃어가는 느낌은 딱히 모순되지 않다. 살아 있는 모두의 공통점은 하루마다 하루를 잃고 있다는 점이다. 열 밤을 더 자면 올해 10월 달력은 종이쪼가리로 변한다. 그것이 괜히 애틋해 오늘은 입을 크게 벌린 채 하루를 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