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이상 # 6
그대는 이따금 그대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하는 아이러니를 실천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소.
- 이상, 날개 -
직장인이 되는 건 내게 가능한 진로 중에 가장 원하지 않는 선택지였는데, 그 선택 이후로 내 삶은 원하지 않는 것에 몰두하는 아이러니에 빠졌다. 싫어하는 음식을 점심으로 먹는 것은 이 경우에 끼지 못한다. 싫어하는 음식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안색 하나 안 변하고 탐식하는 정도는 되어야 아이러리라 하겠다. 물론 음식이나 점심 따위야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간관계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데 그 이야기는 좀 구차하다. 글 한 편의 주제가 될 수 있는 아이러니는 사실상 직장의 바깥에서 일어난다. 그러니까 집에서 말이다.
2020년 7월 며칠인가. 날짜까지는 기억하고 싶지 않다. 그날 밤 한 가지 꿈을 꾸었다. 회의하고 회의를 끝내고 자리로 돌아와 컴퓨터로 작업을 하는 꿈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생생할 수 없었다. 진짜로 출근해서 업무를 하는 듯했다. 군대로 돌아가는 꿈이야 직장에 출근하는 꿈에 비하면 달달하게 사탕을 빠는 일이다. 출근하는 꿈을 꾸곤 거품을 물 뻔했다. 더욱 오싹했던 건 꿈을 꾸게 된 연유였다. 그날 직장에선 별 일이 없었다. 일은 퇴근 후에야 있었는데, 돌이켜보니 난 그날 퇴근 후에도 줄곧 업무에 대한 고민을 했던 것이었다.
업무에 시달린다는 표현이 왕왕 사용된다. 나는 이 표현 아래에 모든 직장인을 하나로 모을 수 있음을 믿는다. '업무'엔 온 시간을 쏟는 격무도 포함되고 간단한 사무도 포함된다. 직장에서 수행하는 일, 업무는 그 자체로 직장인을 시달리게 한다. 인턴 시절 사업부 전체 회식 장소를 물색하는 쪼가리 업무를 했었는데 그것으로도 진이 다 빠져서 맥주 맛을 잃었었다. 사업을 기획하거나 프로그램을 짜거나하는 일을 맡게 되면 삼일 정도는 몸에 힘이 가득 들어간다. 그것으로 어깨가 쑤시고 무엇보다 머리가 띵하다.
자동차 볼트 조여 보는 일도 했었고 논문을 읽고 정리하는 일도 했었다. 지금은 블루와 화이트의 중간 즈음에서 일을 한다. 몸을 쓰던 머리를 쓰던, 일을 할 때 사람을 쿡 쑤시는 부분은 한결같았다. 업무 그 자체보다는 업무 그 자체를 위한 수많은 곁가지 고민들이 범인이다. 그 고민에는 세부적인 업무 순서를 계획하는 일도 있고 시장 상황을 살펴보는 일도 있고 상사의 마음을 추리해보는 일도 있다. 넓게는 업무가 커리어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따져보는 일도 있다. 실상 그런 고민들 때문에 우리는 '업무에 시달린다'.
종종 기계처럼 큰 고민 없이 주어진 업무를 스윽 끝내버리는 동료들이 있다. 나는 그와 정반대이다. 더군다나 고민을 할수록 그 티를 더 팍팍 내곤 한다. 일이 잘 안 풀릴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차라리 머리카락을 쥐어짜는 것이 나을 만큼 안색이 어두워진다. 나로서는 그 고통이 참 크다. 그렇기에 나는 신입 때부터 줄곧 직장에서 아무 생각 없이 지내기 위해 노력해왔다. 업무에 대한 고민에 몰두하는 고통이 싫었다. 그런데 그 고통을 퇴근길에, 아니 무려 집에까지 끌고 왔던 것이었다. 어머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별을 선포하고 집으로 돌아와 이제는 전 애인이 된 사람의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는 사람을 도통 이해하기 싫었는데 그게 내 꼴이었다. 업무 고민으로 죽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 머쓱하기도 해서 누구보다 홀가분한 척 퇴근 인사를 하곤 했었는데 그 길로 집에 돌아와 머리를 또 붙잡았던 것이었다. 솔직히 난 그런 내 모습을 알았다. 종종은 실제 노트북을 가져와 실제 일을 했었다! 그래 놓고 직장 꿈을 꾸었다고 헛기침을 하고 오싹해했다. 웃기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몇 번은, 몇 번은 그런 내 모습을 스스로 해명해보려 했다. 열정으로 포장해보려고 했는데 그러기엔 집에서 업무 고민을 하는 내 마음이 퍽 차가웠다. 노트북을 들고 퇴근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 선배들은 으레 경악하며 그러지 말라 했으니 직장 문화 탓을 할 수도 없겠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직장에서 하는 업무 고민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 짐을 퇴근 후에 좀 덜어서 하려는 무의식의 소행이 아닐까 했다. 확장된 조삼모사랄까. 물론 퇴근 후에 업무 고민을 한다고 해서 출근 후의 업무 고민이 줄어드는 일은 역시 없었다. 해명은 불가했다.
단어는 한물가긴 했지만 워라벨이란 말이 갖는 의미와 가치는 직장에서 여전히 무겁다. 나 또한 이 사상의 철저한 신봉자이다. 이따금 배신을 감행하긴 했지만 말이다. 집으로 업무를 끌어오는 일의 의의가 있다면 그건 워라벨이란 것이 다만 제도적인 변화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깨닫게 한 점이다. 경험상 퇴근 후 마땅히 할 일이 없을 때 워라벨이 쉬이 허물어졌다. 직장인 개인의 철저한 의지가 없다면 업무는 쉽게 집의 문턱을 넘는다. 워라벨의 소중함과 어려움에 무감각해지는 날 이따금 이 고통의 아이러니를 직접 실천해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