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이상 # 4
여자의 얼굴은 이력서다.
- 이상, '광녀의 고백' -
외모는 커다란 불평등의 조건이다. 어쩌면 재산보다도 더 그렇다. 생활에 있어 아주 직접적이고 실체적이다. 훌륭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막대한 혜택을 가지고 사는지를 보아왔고 훌륭하지 않은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칼같이 그러한 혜택들로부터 단절되어 사는지를 겪어왔다. 일례로 대학 선배 중 잘 씻지 않고 다니고 성격도 요상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잘생긴 외모 하나만으로 원활한 교유관계를 유지했다. 얼마나 직접적이고 실체적인가. 그렇지만 나는 외모 불평등 속에서도 남녀 간의 불평등이 또 있다는 건 이해하지 못했다. 잘생긴 남자와 예쁜 여자는 한 묶음이었고 못생긴 남자와 못생긴 여자는 또 다른 한 묶음이었다. 대학 시절에서까진 말이다. 요즘 들어선 남자의 외모 불평등과는 다른 여자의 외모 불평등만의 이상스러움을 느낀다. 그런 감각을 만든 한 계기가 있다. 직장에서의 일이었다.
작년 한 외부 인사가 조직장으로 선임되었다. 40대 초반의 여성 분이었다. 다소 보수적인 회사의 문화를 감안하자면 굉장히 파격적인 선임이었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기사까지 날 정도였다. 그리고 꼭 세 달이었다. 세 달 만에 조직장님은 그녀의 왼팔, 오른팔, 오른팔 엄지, 오른팔 검지, 오른팔 중지, 왼팔 약지 이렇게 꼭 여섯 명을 뺀 조직의 모든 인원을 적으로 만들었다. 말단 사원이던 나를 포함해 약 서른 여명 되는 조직 인원이 빠짐없이 조직장님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블랙리스트란 인사를 받지 않는 사람들의 명단이었다. 조직은 파탄 났고 사람들의 불만이 용암처럼 흘렀다. 그러던 와중이었다. 몇몇 선배들이 조직장님을 감자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것이 조직 전체의 은어가 되었다. 부인할 수 없는 별명을 붙이는 일만큼 잔인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 단어가 거북했다. 별명의 유래는 뻔했다. 차라리 듣기라도 익숙한 호박이 낫겠다 싶었다.
그 점이 묘했다. 어째서 여자들에게 있어 업무적인 무능력은 외모 비하의 근거가 될까. 근거라는 표현보다 계기가 더 맞겠다. 여자 동료의 업무 능력을 비판하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그의 외모를 평가하는 이야기를 낳았다. 조직장님의 업무 능력은 덜 익은 안목의 내가 보아도 처참했다. 팀장들의 카톡을 차단하는 것이나 학력 위조, 인신공격을 자행한 것만 꼽아도 말 다했다. 그 와중에 비즈니스 감각도 꽝이었다. 하지만 혀를 내두르게 하는 그의 무능력이 동그랗고 울퉁불퉁한 얼굴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알았다. 조직장님을 향해 쌓이고 쌓인 적대감을 어떻게든 표출하고 싶은 마음은 잘 알았다. 어찌 보면 감자라는 표현은 농도 짙은 적대감을 그나마 맑고 귀엽게 순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동료들은 감자라는 표현을 쓰며 그나마 웃었다. 다만 조직장님의 수많은 단점들을, 더군다나 부하들을 실질적으로 괴롭힌 여러 가지 성격들을 뒤로하고 구태여 외모를 꼬집는 별명이 붙여지고 두루 퍼지는 이유가 의문이었다.
동료 중 한 명은 선배로부터 '업무 못하는 걸 이쁜 걸로 때워선 안된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외 불평등을 여성 문제와 연관 지은 데엔 조직장님의 이야기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외모 관련 이야기들이 있었고, 여자의 경우 그런 외모 평가가 업무 능력에 대한 이야기와 거의 함께했다. 이상스러운 지점이었다. 남자의 경우엔 일 잘하니 못하니 하는 말과 잘 생겼고 못 생겼다는 말이 서로 따로 들렸다. 묘사해보자면 남자에게 있어 업무 능력과 외적 조건은 거리를 두고 나뉘어 있는 반면 여자의 경우엔 둘이 하나로 뭉쳐져 있는 듯했다. 업무 능력이 외적 조건 위에 덧씌워진달까. 예쁜 여자의 이력서는 비단에 이력을 쓴 것이고 못생긴 여자의 이력서는 A4 용지에 이력을 쓴 셈이다. 업무적인 후광이 사라지면 곧바로 외모가 날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는 업무적인 후광이 있음에도 외모가 동시에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조직장님에게서 더 이상 혁신의 후광을 찾을 수 없게 된 후 다음으로 보이는 것이 감자일 수 없었겠다.
남자건 여자건 외적 조건이 직장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피차 동일하다. 다만 그 영향의 역학이 상이한 것이다. 남자에게 있어 외적 조건은 가십에서 시작해 가십으로 끝난다. 여자의 경우에도 외적 조건은 가십으로 시작되지만 대게 가십이 아닌 것으로 끝난다. 여자의 경우 업무 능력이 부족한 경우 외적 조건이 스페어로 등장한다. 여자 동료의 업무적인 무능력을 비판하다가 은근슬쩍 그래도 예쁜 편이다라는 말로 머쓱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경우가 참 많았다. 바로 그때 그 여성분이 우연찮게 예쁘지 않았다면 그대로 별명이 붙여지는 것이다. 업무 능력이 부족하고 또 못 생겼다는 점이 남자에게 있어선 하나의 잘못과 하나의 아쉬움이지만 여자에게 있어선 두 개의 잘못이 된다. 이 차이가 곧 남자의 외모 불평등과는 다른 여자의 외모 불평등의 이상스러움이라고 하겠다.
이 점이 그저 이상스러운 것인지 잘못된 문제인지 결정하지 못하겠다. 나의 젠더 감수성은 딱 이 지점까지만 나를 이끌었다. 이런 생각도 든다. 외적 조건이 업무 능력의 스페어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을 최대한 활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모르겠다. 이만 줄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