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이상 # 2
싸움하는사람은즉싸움하지아니하던사람이고또싸움하는사람은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었기도하니까
- 이상, '오감도 - 시제 3호' -
직장에서 본 가장 과격한 싸움은 주먹과 발길질이 오고 가는 난투극도 아니고 고성이 오가는 욕지거리도 아니거니와 하물며 뒷담화로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은밀한 뒷 싸움도 아니었다. 물론 그것들 또한 싸움은 싸움이었고 과격하다면 과격했고 실제로 벌어지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도 주식과 부동산과 자동차 브랜드를 무기로 삼아 싸우는 재산 혈투에 비하면 사소하고 덧없다. 누가누가 더 재테크를 잘하고 있는지, 누가누가 더 돈의 흐름을 잘 보는지, 누구의 뱃심이 더 두둑한지를 다투는데 그게 참 치열하기 그지없다. 지위, 직급도 막론하고 나이도 막론하고 심지어 일 잘하는 것도 소용없다. 더 돈이 많은 사람, 돈 나오고 있는 곳을 더 잘 아는 사람이 그냥 이긴다. 돈 무게를 늘리기 위해 명절날 일가친척에게도 곧잘 숨기는 재산 내역이 생면부지보다 손톱만큼 더 나은 사람들과의 커피타임에서 술술 밝혀진다. 나의 경우를 빌려 말하자면 일 년가량 같이 일했던 부장님의 부동산, 주식 보유 현황, 본인과 와이프 분의 차 기종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이에 더해 5천 정도 되는 현금의 향후 투자 계획까지 알고 있는데 이건 부장님의 딸마저 모른다. 그분은 내가 마주한 사람 중 가장 격렬한 투사였지만 그분도 종종은 졌다.
이 싸움의 가장 무서운 점은 싸움판으로의 참여가 불가역적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한 번 참여하면 그 후론 사장님도 부모님도 못 말린다. 격투에 한번 참여한 후면 붉은 뿔의 소처럼 그저 돌진뿐이다. 오래된 수납장에서 우연찮게 발견한 동전 몇 개의 내역까지 탈탈탈 털게 된다. 이건 과장이다. 아니 과연 과장일까? 언제고 라떼 한 잔 정도의 투자이익을 가지고 나를 한 시간 동안 두들긴 선배가 있다. 나는 커피 한 잔에 조각 케이크까지 얻어먹음으로 선배에게 지지 않았다. 부자 혹 재테크 성공이라는 타이틀을 향한 이 혈투는 사람을 물들이는 담배 같은 중독성이 있다. 또 그런 유해물질과는 다르게 멀리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지 않다. 돈 문제에 대해 꾀 뻣뻣한 사람도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반년 안에 재산 혈투에 참여하게 된다. 내가 꼭 그러했다. 상경대 출신인 점이 무색하게 난 돈을 다룰 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십 년 정도 살았던 본가의 집값을 취업 후 어느 대리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는 서울 북부에 집을 산 어느 과장님의 콧대를 누르기 위해 저 멀리 동탄에 있는 내 본가를 써먹었던 것이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싸움에서 한 번 이기게 되었는데 그 느낌이 참 좋았다. 지금의 난 암호화폐에 명운을 건 채 격투장 바닥에 웅크려 있다.
난 싸움을 싫어한다. 그럼에도 이 싸움에선 지고 싶지도 빠질 수도 없다. 심지어는 동료 전부를 단번에 녹다운시키는 파퀴아오 뺨 때리는 완벽하게 아름다운 승리를 꿈꾸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직이나 직장 부적응 같은 사유가 아닌 재테크 성공이란 사유로 퇴사를 하는 상상을 한다. 나로서는 퍽 이상스러운 마음이 아닐 수 없다. 그 전말을 고민해본 결과 하나의 결론을 얻었다. 나와 나를 비롯한 모든 직장인들로 하여금 직장 내 재산 혈투에 참여하지 아니할 수밖에 없게 하는 원인에 대한 답이다. 그것은 동료 의식이다. 커피를 함께 마시고 있는 이 사람이 나의 동료라는 점이 그와 물꽃 튀기는 재산 혈투를 벌이게 하는 동인이 된다. 직장인에게 있어 동료란 비슷한 조건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 까놓고 말해 똑같은 임금 테이블에 속한 사람을 칭한다. 비슷한 조건의 사람보다 뒤처지는 것만큼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없고 비슷한 조건의 사람보다 앞서는 것만큼 마음을 조급하게 만드는 것이 없다. 직장인에게 이러한 불편함과 조급함은 왼팔과 오른팔과 같다. 사람을 치는데 그만한 도구가 없다. 50%가량 오른 사내 공모주를 신청하지 않은 불편함으로 얻어맞다가 부모님의 오피스텔 장만을 빌미로 동기를 한 대 쳐본 희열을 난 잊지 못한다. 그렇게 나도 너도 투사가 된다.
이상의 시는 이렇게 끝난다. '싸움하지아니하던사람이나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움하지아니하는것을구경하든지하였으면그만이다.' 도돌이표가 난무하는 이 싸움에 있어 팔짱 끼고 구경하는 것만큼 완전한 승리도 없다. 하지만 그것은 순도 100.00%의 금처럼 불가능한 상상이다. 꽤 맑았던 나 또한 그런 구경은 꼭 두 달만 가능했다. 내가 겪은 첫 번째 선방은 주식 계좌가 없다는 말에 웃음기도 없이 나와의 눈 맞춤을 피하던 동기의 모습이었다. 그건 동기가 ppt를 만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 말을 듣고 내가 취했던 모습에 닮다 못해 똑같은 모습이었다. 가련하다 못해 쳐다보는 것마저 창피한 마음. 주식 계좌에 암호화폐 계좌까지 만들고 그것도 성에 안 차 AI 로봇 투자까지 해본 지금에도 종종 그런 눈 돌림을 마주하는 것이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공략법이 없는 싸움인 건 안다. 그래도 노련해질 수는 있는 것 같던데 그게 나한테 가능할지는 좀 의문이다. 독자들은 어떠한가. 이 글을 보는 직장인 여러분의 싸움은 얼마나 치열한가. 혹 치졸할까. 아무렴 직장을 떠나는 날까지는 배탈 없이 잘 버텨보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