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에 줄 하나를 묶으며

내 마음의 이상 # 3

by 직장인 B
혹누가눈에보이지않는줄을이리저리당기는것이나아니겠나요.

- 이상, '청령' -



주체성이라는 단어가 있다. 대학 시절에는 양장본 서적에서 곧잘 찾던 단어인데 요즈음에는 자기 계발서나 읽기 머쓱한 블로그에서 더 쉽게 찾곤 한다. '내 삶을 주체적으로 가꾸는 법 Tip 3'과 같은 블로그 말이다. 그런저런 글을 읽다 보면 주체적으로 사는 것이 진짜 좋고 짱이라는 걸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긍정하는 것만 같다. 나도 그 주체성이라는 것이 달콤한지는 몰라도 몸에 좋은 것임은 알겠다. 주체성은 삶 전반에 빠짐없이 적용되는 개념이고 그러한 점에서 직장 생활도 예외가 아닐터다. 바로 그것, 직장에서의 주체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정답은 없어도 결론은 있다.


결론부터 말해 난 좀 회의적이다. 그러니까 '직장'에서 '주체적으로 사는 일'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러니까 직장 생활을 전제하자면 주체성이라는 것이 과연 무소불위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다소 의문이다. 그러니까 직장에선 정말이지 주체성을 잃고 싶다. 누가 주어도 공손히 돌려주거나 그것이 안되면 몰래 탕비실에 버리고 싶다. 내 또래의 어느 친구는 자신이 회사의 부품으로 전락해버린 것에 크게 고통을 받던데 나는 부품이 되지 못해 고통을 받는다. 술사의 조작에 몸을 내맡긴 채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의지 없이 움직이는 시간이 내겐 기쁨이다. 이상스러운 마음이 아닐 수 없겠는데 이렇게 비뚤어진 데에는 나의 기구한 신입 살이 역사가 있다.


첫 번째 사수가 이직을 했을 때는 바야흐로 20년 5월, 내가 팀 배치를 받고 꼭 2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신입사원 연수를 끝낸 새하얗게 파란 사원으로 만났던 첫 사수님은 팀원들과 결코 점심 식사를 같이 하지 않는다는 점만 빼면 모조리 배울 것만 있는 분이었다. 그래서 많이 배웠다. 첫 사수님과의 이별 후 8월 즈음 다시 사수님이 오셨는데 또 2개월 만에 다른 업무에 배치받고 떠나셨다. 5월과 8월 사이, 10월과 12월 사이에 난 철저히 혼자였다. 나의 업무 파트는 말마따나 '나'의 업무 파트였다. 파트장과 파트원을 모두 겸직했다. 공교롭게도 팀장님은 꾀 인내심이 있는 분이어서 부담 주는 것 없이 내가 파트 업무에 숙달하되기를 기다려주셨다.


파트 업무란 단순했다. 팀에서 개발하고 있는 플랫폼의 일부 기능을 기획하는 일이었다. 직장인 독자분들이라면 아실 테다. 잘하려는 만큼 잘하게 되는 것이 기획 업무다. 그야말로 얼마나 주체적으로 일하느냐가 업무 성과의 질과 양을 가른다. 이 말을 처음 선배에게 들었을 땐 가슴이 뛰었다. 첫 번째 사수님이 나간 5월의 어느 날에 그랬다. 파트 업무를 오롯이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모종의 권력 의지가 두 손에서 간지럽게 꿈틀대었다. 열심히 공부하며 일했고 실제로 선배들에게 인정도 받았다. 회고하자면 나는 꾀 잘했다. 문제는 노력의 성과들이 너무나도 쉽게 한 줌의 재로 변한다는 점이었다. 이건 나의 문제도 아니거니와 선배 혹 팀장님의 문제도 아니었다. 그저 직장이란 시스템이 가진 성질이었다. 좁게는 기획, 넓게는 사업이라는 건 백 번의 주사를 놓은 다음 한 두 번의 효과를 기다리는 일이었다. 삽으로 하든 포클레인으로 하든 결국엔 모래성 쌓기다.


사수님과 같이 일할 때는 몰랐다. 불현듯 진행 중인 업무가 뒤집히고 새로운 업무를 시작하는 일의 혼란스러움을 몰랐다. 구내식당의 메뉴가 바뀌는 정도의 일로 알았다. 그렇지만 나의 의사로 결정한 사안이 팀 전체의 의사결정 속에서 허물어지는 것은 꾀나 충격이었다. 두 경우의 차이점을 말하자면 단연코 주체성의 있고 없음이다. 주어진 업무를 나의 것으로 알고 주체적으로 일할 때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과자를 주워 먹듯이 일을 할 때 생겨나는 차이다. 전자는 쿨하고 후자는 궁상맞다. 전자의 쿨함은 아침에 눈이 번쩍 떠진다는 점이다. 의지가 넘쳐 늦잠 잘 일이 없다. 후자의 궁상은 사무실에서 꾸벅 졸아도 별다른 영혼의 타격이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아침에 힘차게 출근하여 열심히 일한 결과들이 등에 날개를 날아 사라질 때는 정말이지 밤잠이 안 온다. 직장이란 그런 곳이었다. 주체적으로 산만큼 불면이 깊어지는 곳이었다.


직접 기획하고 직접 개발까지 한 기능이 플랫폼에서 빠지는 것으로 결정 났을 때 난 주체성을 잃었다. 그 후로는 내가 직접 내 몸에 줄을 묶는다. 그렇게 줄을 묶으면 누군가가 당겨서 이리저리 움직여주는 곳이 또 직장이었다. 이제 이건 나의 필수 직장 생존 해법이 되었다. 끊임없이 허물어지는 모래성 쌓기를 흔들림 없는 자세로 지속하는 직장 선배들의 비기는 주제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철저히 부품이 되는 것이었다! 올해 그러니까 21년에 들어선 후로는 사수의 지시에 따라 고대로 업무를 수행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것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사수님은 너무 자신의 뜻대로만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을 하지만 나로서는 나를 다시 자유롭게 풀어줄까 봐 걱정이다.


최대한 궁색하지 않게 써보려고 했는데 그게 통했는지는 의문이다. 꼭두각시가 되겠다는 말이 쿨하지 못한 건 사실이다. 허나 쿨하다 못해 냉혹했던 신입 살이 역사를 떠올리자면 등골이 시려 몸에 묶인 줄들을 여민다. 까놓고 말해 성과 달성에 있어 주체성의 있고 없음은 생각보다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다!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한다고 해서 업무 성과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고 혁신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이건 직장인들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꼭두각시가 된 이후부터 글도 잘 써지고 시도 잘 읽힌다. 삶에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렇다. 직장에서 주체성을 버리기로 한 나의 이상스러운 마음은 도리어 삶 자체의 주체성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었다고 풀어볼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조금은 쿨하게 글을 마무리한 것일까. 독자들의 긍정적인 판단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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