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이상 #1
문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것은안에생활이모자라는까닭이다.
- 이상 '가정' -
어느 날 퇴근하고 문 앞에 섰는데 꼭 남에 집 문 앞에 선 느낌이었다. 삐삐삐삐 내가 아는 네 개의 숫자로는 열리지 않을 것 같고 어떻게 하여 연다고 해도 그 안에 낯선 물건들만 꽉 차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것은 기분에 불과했다. 도어록은 날 기다린 애완동물처럼 열렸고 그 안에는 익숙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침대, 옷걸이, 하물며 세탁기 안 속옷까지도 영락없는 나의 것이었다. 하지만 난 거기에서 안도감을 느끼긴커녕 괜한 오싹함을 느꼈다. 일을 마치고 퇴근을 하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와 거실에 섰지만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해 아직 어디론가 더 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기분에 불과했지만.
걸었다. 조그마한 집에는 더 깊숙이 나아갈 곳이 없었기에 집을 도로 나와 인근 실개천을 걸었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일을 무탈하게 마쳤고 사람들과 특별한 트러블도 없었던 날이었다. 그런데 그런 좋은 날 마음에 생겨난 이상스러운 반응은 무엇일까. 무엇 때문일까. 거실은 야외처럼 허했다. 차라리 실개천을 걷는 그 순간에 하루의 여정을 끝낸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 안도감과 편안함을 내 집 내 거실에서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이 혼란스러웠다. 그 기분에 대한 의문이 가득해 머리가 퍽 무거웠다. 우울감이나 외로움과는 다른 이상스러운 불안감. 그것은 일을 채 마치지 못한 상황에서 동료들의 카페 모임에 끌려갈 때 느끼는 감정이었다. 아니 또 그것과는 다른 이상스러운 불충족감.
집에 뭐가 씌었나. 아니면 조그마한 집에 대한 내심의 불만이 그렇게 표출되는 걸까. 인테리어를 다시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실개천의 끝엔 초등학교 운동장 반 정도 되는 작은 댐이 있었다. 그날 그 댐엔 오리들이 한 무더기로 둥둥 떠있었다. 물가를 전전하는 오리를 보니 내심 마음의 불안이 사그라들었다. 진짜로 집을 잃은 오리의 처지와 단지 이상한 기분을 가질 뿐인 나의 처지가 비교되었다. 그래도 집은 집이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배도 고파 도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똑같은 이상스러운 기분으로 도어록을 열고 집에 들어섰다. 도착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 그대로 거실에 섰다. 도로 나갈까 하다가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 속엔 이상스러운 마음의 비밀이 있었다.
허기 때문이었다. 엄밀하게는 텅 빈 냉장고 때문이었다. 냉장고엔 흔한 식자재 하나 없었다. 겨우 김치통과 썰리지 않은 양파 반 조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날 집엔 라면조차 없었다. 출출하지 않은 퇴근길은 어느 직장인에게도 불가능하다. 기껏 퇴근하여 집에 돌아왔는데 집어먹을 것 하나 없으니 완전히 도착하지 못한 기분이 들 수밖에... 출출한 상태로는 어느 곳이든 들판이다. 하물며 내 집 거실이라도 그곳이 나의 출출함을 달래줄 수 없다면 당장 어느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게 낫게 된다. 내 무의식이 문간에서부터 그걸 알았던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도 굶주림을 해소할 수 없는 곳을 집처럼 느낄 수야 없었다. 생활이 모자라니 문이 그렇게 낯설게 잠겨있던 것이었다.
의식주라는 말이 있다. 생활을 이루는 삼대 요소를 일컫는 말이다.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빠지면 참 생활이 못된다. 그 점에선 집은 있지만 먹을 것이 없었던 나와 먹을 것이 지천에 있지만 집은 마땅히 없는 오리나 그 처지가 다를 바 못되었다. 이건 퍽 오싹한 경험이었다. 집에 먹을 것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과 전혀 없는 것이 퇴근길의 심정을 크게 뒤바꿀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말이다. 생활이 없는 집으로는 제대로 된 퇴근의 기분을 누리지도 못한다. 퇴근길에 구태여 조그만 간식이라도 사가고 싶은 마음이 깃드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오싹한 예감과 맞닿아있지 않을까도 싶다. 힘든 일과 후에 집의 문 앞에서 열리지 않을 듯한 문고리를 마주하는 기분이란... 어느 출근길의 공포보다도 오싹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