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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Oct 11. 2020

우울한데 좀 쉬고 싶습니다.

꼭 질병이어야만 하는가

이따금 우울하고 힘든 시기가 있다. 그건 비단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지는 못했지만, 우울해서 식욕도 삶의 의욕도 줄어들고 마음이 힘들 때가 있다. 이 사회에서 ‘우울하다’고 호소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그나마 ‘우울증으로 진단을 받았다’고 얘기해야만 그나마 조금의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난 이런 풍조가 유해하다고 생각한다. 우울감에 빠졌을 때, 조금 힘들기 시작할 때 사람에게 회복할 수 있는 틈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병들어 돌이키기 힘든 수준까지만 가야 ‘쉴 권리’를 내어주는 건 사회가 병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상태가 악화되어 우울증에 걸려야만, 진단받아야만 스스로를 조금이라도 돌볼 기회를 주는 것은 잘못됐다. 몸도 그렇다. 감기 기운이 있거나 피로할 때 쉴 수 있게 해 줘야 더 큰 병을 피할 수 있는데, 예방으로서의 휴식을 ‘낭비’ 취급하니 말이다. 이 사회의 규칙에 따르면 쉬고 싶다면 질병으로 진단받을 만큼 아파야만 한다. 조심스럽게 말하지만, 이는 정신적 우울감 상태를 악화시키는 데도 일조한다. 우울감이 발생했을 때 우울증이 아닐까? 우울증이어야 나에게 ‘아플 권리’가 생기는데,라고 스스로 되새기면서 우리의 정신은 더 병들 수 있다. 스스로에게 아파할 수 있는 ‘권리’를 허용하기 위해 회복의 여지를 차단해버릴 수도 있다.

우울증이 아니더라도 아파할 권리를 허락해달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사회만이 미래를 가질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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