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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Nov 23. 2020

2020, 서른

생일을 맞아 올 해를 기억하며

어렸을 적 나의 미래를 상상하던 때에 서른은 결말을 내기에 충분한 나이였다. ‘ㅇㅇ는 결국 ㅇㅇ하였습니다’로 주로 끝나곤 했던 동화나 소설, 만화영화 모두가 나에게 상상 속 내 인생의 결론을 재촉했다. 이전에는 가부장제가 사랑의 탈을 쓰고 내 인생의 결론을 내주었다. ‘ㅇㅇ는 결국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다.’ 매일에 충실하는 삶은 살아왔지만 내 상상은 주로 거기서 절벽을 만나곤 했다. 그리고 20대, 나의 삶의 방향은 내가 상상하던 것과 다르게 흘러가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아내로 끝나는 삶을 꿈꾸지 않는다. 그것이 사랑의 이름을 하고 있다고 한들, 사랑은 내 곁에 있을 뿐 나의 인생을 끝내는 결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어린 나에게 서른은 인생의 결말이 보일 것 같은 나이였다. 서른쯤이면 안정된 직장과 가정을 갖고 남은 미래의 커리어가 어느 정도는 가늠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또한 이제는 아니라는 것을 안다. 어렸을 적, 의사의 아내였던 영어 선생님은 우리에게 말했다. “나는 그래도 너희가 부러워. 너희는 꿈이 있잖아, 난 없어.” 수많은 선생님들을 만났지만 그 선생님의 그 말만큼은 이상하게 기억 속에 선명하게 박혀있다. ‘나는 계속해서 어른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결국 어른이 되면 꿈을 잃게 되는 걸까?’ 나는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시대가 바뀌어 서른은 사실 아직 너무나 어린 나이라, 결론을 내기에 어려울뿐더러 사회 또한 변화하여 서른이란 나이에 안정적인 직장과 독립적인 기반을 갖기는 어려워졌다.


나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분야에 몸 담고 있고, 또한 생각하지 못했던 분야를 새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직 나에게는 이 일련의 행위의 결과가 보이지 않고, 다만 그다음 걸음을 어렴풋이 상상해볼 뿐이다.


난 지금 불행하지는 않다. 하지만 아직도 나의 행복에 대한 상상은 끊임없이 지금이 아닌 상태를 향한다. 나아질 것이란 희망을 가지니 좋으면서도 행복의 시기를 자꾸 미래에 놓는다는 점이 무섭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 혹은 나의 시간이 짧아져 미래를 더 이상 상상할 수 없게 된다면 나는 어떤 힘으로 살아야 하나. 나에게는 끊임없이 행복의 무게중심을 지금으로 가져오는 연습이 필요하다.


스무 살과 비교했을 때 나는 많이 무뎌졌다. 마음이 저리도록 무언가에 마음을 쓰기보단 항상 조금 더 떨어져서 보려고 하고, 세상이 나에게 시키는 것을 조금 더 거부하려고 한다. 나의 마음을 쓰게 하는 사랑 노래를 피곤하다고 여기게 되었지만, 아직도 선명한 달의 테두리를 보고 감탄하거나 나무가 낙엽을 통해 땅으로 잎을 돌려보내는 광경을 보며 자연은 참 아름답고 정교하다고 생각할 만큼의 감성은 남겨두었다.


아직까지 나는 학창 시절보다는 대학생 시절이, 대학생 시절보다는 지금이 낫다고 생각한다. 몸 상태도 사실 더 나아졌다. 나의 중심을 외부로부터 내 안으로 다시 끌어오게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나를 위하는 방향이 어떤 것인지도 좀 더 생각해볼 수 있었고 나를 억누르는 억압과 규율로부터도 아주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그러면서도 항상 이 자유로운 상태가 지금 내가 속한 작은 영역에서 뿐 아니라 세상 전체에서도 지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자유를 찾을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변화를 꿈꾸고 있다.


아직은 학원을 다니던 내 나이대의 친구들을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만약에 물어본다면, 나는 아직도 꿈꾸고 있고 되고 싶은 게 많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의 십 년 동안에도 세상과 나에 대해서 앞으로도 좀 더 잘 알아가길, 언제까지나 꿈꿀 수 있길 바란다. 십 년 뒤 내가 이 글을 보며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길 바라며.


+ 맞춤법 검사를 하며 느낀 점 : 초등학생 때랑 변하지 않은 점은 띄어쓰기를 아직도 헷갈려한다는 점 같다. 보통 받아쓰기에서 띄어쓰기를 제일 많이 틀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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