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오기 Jul 18. 2024

‘이번 역은 남성, 남성역입니다’

맨 처음 역이름을 들었을 때 이 역은 남성만 사나하고 피식 웃었던~


‘이번 역은 남성, 남성역입니다’

‘남성역이구나’. 맨 처음 역이름을 들었을 때 이 역은 남성만 사나하고 피식 웃었던 날들도 있었다. 나에게는 남성. 여성이 아닌 내 친구가 사는 동네요. 고마운 역무원이 떠오르는 역이다. 그나저나 아침에 친구가 뭐라고 했는데…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안부를 나누는 친구들이 있다

한 명은 남성역 근처에 사는 친구, 다른 한 명은 이태리 밀라노 반, 성산동 반 사는 친구다.

모두 한국에 살았다면 굳이 아침 일찍 안부를 나누지 않았을 텐데 밀라노에 사는 친구와 소통하다 보니 어느새 아침 루틴이 되었다.

늦게 인사를 하면 ‘늦잠 자나?’ ,‘어디 아프나?’ 궁금할 정도다.


 오늘은 세 명 중 가장 부지런한 남성역에 사는 친구가 

<비 와서 장화 신고 출근 중, 오기가 제주에서 준 우산 들고 작년 제주여행 추억 소환 중>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겨우 채비하고 부랴부랴 나가다가 <남성역=효선=우산>이라고 답을 했다.

우리 셋 만이 아는 연상법이다.


 몇 년 전인가, 기억도 희미한 어느 날, 온수에서 전철 탈 때는 비가 안 와 우산을 안 가지고 나갔는데 전철을 타자마자 비가 억수로 내렸다.

그때 친구랑 카톡 하다가 친구가 지금 비 엄청 오는데 ‘우산 가지고 나왔니?’라고 묻길래 안 가지고 왔다고 했더니 내가 전철 타는 플랫폼 위치를 물었다.  왜 꼬치꼬치 묻냐고 해도 ‘그냥’이라고만 하면서 지금 지나가는 역과 위치를 구체적으로 말하라고 채근했다. 늘 타는 곳이라 '4-2’'라고 대답하고 아무 생각 없이 출근하는데 남성역에서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쨘~’ 하고 나타나는 게 아닌가? 그것도 우산을 두 개씩이나 들고 말이다. 


 친구는 남성역에서 한 정거장 더 가면 나오는 이수역에서 내려 과천 방면으로 가는 코스였는데, 나를 못 만나면 어쩌려고 그런 깜짝쇼를 했는지…

친구 말에 의하면 이왕 한 정거장 가면 환승할 거, 나한테 우산 주고 가면 내가 비도 안 맞고 서로 얼굴도 보면 좋겠어서 깜짝쇼를 했다고 한다.


 아무리 집이 가까워도 그렇지, 바쁜 아침 출근길에 일부러 우산을 하나 더 가지고, 내가 탄 위치로 승차해 깜짝 쑈를 하다니 정말 정말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오던 날이었다.

내게 억만금을 준 것보다 더 고맙고 고마워 오래오래 잊히지 않는 출근길 중 하루다.

 그래서 ‘남성역’만 지나면 가끔 그 친구가 생각나곤 한다.


 친구가 말한 ‘제주에서 내가 준 우산’은 작년 제주 세미나에 갔을 때 특별히 회사기념품으로 만든 우산을 친구에게 챙겨줬더니 잘 사용하나 보다. 나도 오늘 그때 나눠 준 기념품 우산을 오늘 들고 나오긴 했다. 그때도 내가 업무로 제주 출장을 갔는데 마지막 날 두 친구가 내 일정에 맞춰 제주로 와 주어 특별한 여행까지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딘가에서 받은 장우산도 일부러 갖다 주고 최근 만든 접이식 미니 양우산도 특별히 챙겨주었다. 예전엔 비 오는 날이면 비닐 우비 쓰고 학교로 우산 들고 오시던 울 엄마가 생각났는데 그날 이후로 남성역 사는 친구가 생각나곤 했다.


 오늘 지하철 역을 알리는 안내 멘트를 듣다가 ‘내가 준 우산을 쓰고 나왔다는 친구’가 또 생각난다. 열린 전철 문 틈 사이로 친구가 활짝 웃으며 들어오는 것만 같다. 



2003년에 내가 그림판으로 그린 우산.~^^


이전 12화 지명 속에 연관된 이름이 숨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