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책을 읽지 않아도, 글을 쓰지 않아도 여기까지 오는 여정이~
오랜만에 휴일에 도서관에 왔다.
평생 도서관에서 일했고, 도서관 관련 일을 하는데 막상 도서관에 오면 또 좋다.
친구가 그랬다.
‘도서관은 이용자로 올 때가 가장 좋다’고….
맞다. 직원으로 있을 땐 일이지만 이용자로 갈 땐 뭐든 누릴 수 있다.
동네 어린이 도서관이 있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았지만
어른도 이용해도 된다는 걸, 안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예전 살던 동네는 어린이와 청소년 자녀가 있는 학부모만 이용대상이던 기억이 있어서다.
어차피 퇴근이 늦으니 일찍 문 닫는 동네 도서관을 올 수도 없고, 이용해 봤자 토요일이나 일요일인데 직장인의 휴일은 황금 같은 시간이라 웬만해선 도서관에 오기가 쉽지 않다.
나이가 들어가며 점점 주말에 해야 할 일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
오늘은 이른 저녁에 모임 약속이 있어 집에서 뭣 좀 해보려고 했는데,
괜히 뭉그적거리며 티브이만 틀고, 냉장고만 여는 것 같아 잠시 짐을 싸서 나왔다.
오로지 2시간 정도 집중하고 싶었다.
제출할 글이 있는데 메모 수준이어서 메모를 조각보처럼 이어 보고 퇴고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매번 겨우 즉흥적으로 생각한 단상을 적어 내리기에도 바빠 뒤로 미루기 일쑤였다.
막상 아직은 뜨거운 9월의 햇살을 친구 삼아 걸어서 도서관 창가에 앉으니 하려던 작업은 안 하고 창가 사진도 찍고, 찍은 사진을 가족 톡에 올려며 ‘여기 있다’라고 자랑 겸 보고를 하고 있다.
본래 하려던 글 수정은 안 하고 또 다른 숙제인 '100일 글쓰기 숙제'로 지금 심정을 적어 내리고 있다.
아무래도 100일 매일 글쓰기는 작은 도전이 아니었다.
온통 글감을 생각하고 앉아서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나의 100일 도전은 절대 후회가 없다.
운동을 덜 하고. 친구를 덜 만나고. 일상을 좀 소홀히 했지만 뭔가 알 수 없는 뿌듯함이 있으니 말이다.
이런 사유를 즐기는 토요일 오후의 도서관 창가 옆자리가 무척 맘에 든다.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지 않아도
글을 쓰지 않아도 여기까지 오는 여정이 괜스레 뿌듯하다.
그만큼 내 마음의 여유가 생긴 걸지도
뭔가 해 보려는 의지가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따라 도서관 창으로 보이는 배롱나무 분홍 꽃이 유난히 풍성하다.
창 밖의 차들 소리조차 소음으로 들리지 않는 주말 오후다.
아무래도 오늘 하려던 글 수정은 다 못 하고 갈 것 같다.
그냥 책이나 빌려가야겠다.
휴일 도서관 나들이는 그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