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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오기 Mar 20. 2023

몇 번째 집일까?

이사를 하며 내가 살아 온 집들을 세어 본다.

 이사를 했다.

하루종일 짐 정리를 했다.

그런데도 평소 사용하던 자잘한 물건들 어디에 있는지 몰라 헤매기 일쑤다.


게다가 이삿날에 출장을 다녀오느라 더더욱 살림살이의 행방을 찾지 못해 헤맨다.     

아침부터 여기저기 정리를 하다 보니

다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손은 거칠어지고 난리 브루스다.

그래도 이제 70% 정도는 정리한 것 같다.

내일 에어컨만 설치하면 대강 마무리가 된다.     


분명 같은 단지, 같은 평수로 이사를 왔는데 집 구조가 다르다 보니 느낌이 많이 다르다.

특히 화장실과 싱크대가 전에 살던 집과 달라서 좀 난감하다.

좋아진 게 아니라 악화랄까?     

덕분에 짐을 재배치하느라 분주하다.     


오늘도 짐을 정리하다가 옷을 엄청 버리고

자잘한 짐들도 제법 버렸다.

재활용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느라 종종걸음을 했다.     

그 많은 쓰레기들은 다 어디로 가는지


지난주부터 짐을 이고 사는 내가 싫어진다.

게다가 짐들이 거의 다 내 짐이다.

그이의 업무 특성상 짐이 많아 별도 선반이 있긴 하지만 나머진 다 내 짐들이다.     

책도 거의 다 내 꺼.

옷도 내 것이 많고, 가방도 신발도 뭐 이렇게 사는 데 짐이 많고

난 왜 이렇게 가지고 사는 물건들이 많은지

벌어서 물건 사 들이느라 바빴던 것 같다.

그렇다고 명품도, 비싼 물건들도 아닌데 자질구레하게 종류가 많기도 하다.

사는 게 그렇듯 가지고 사는 짐도 참 다양하다.

     

게다가 체형이 자꾸 변하다 보니 옷을 바꾸느라 더 산 것 같다.

과거 옷들이 안 맞고, 나이가 들어가니 예전 옷이 안 어울리고

다 핑계일까? 사실 그런데... 

     

큰 짐은 옮겨 놨지만 그 안에 물건 배치를 다시 다 하다 보니

이사만큼 분주하다.     


그러다 문득, 이 집이 나의 몇 번째 집일까 궁금해졌다.     

유년에는 양평 고향 집에서 태어나 19살 때까지 한 번도 이사를 간 적이 없다.


그 이후 남양주 도농리 큰 오빠네 집에서 학교를 다니고 결혼할 때까지 살았는데

골목길 중앙쯤 자리한 작고 아담한 주황색 양옥집이었다. 

그곳에서 두 집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오빠네 집에 세 들어 살던 빙그레 공장 다니시던 곱슬머리 아저씨는 또 어떻게 사시는지 

그 당시 이웃에 살던 또래 소라고모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지?

갑자기 오래전 사람들이 궁금해진다.

이제 길 가다 만나도 모르고 지나칠 것 같다. 


신혼은 서울 대*동에서 1년을 살고, 

큰 애 돌 즈음에 중앙경제신문 하단 아파트 입주공고문을 보고 

우연히 시흥시 행복동에 둥지를 틀었다.  

새로 생긴 택지지구에 이사를 와서 8년쯤 살다가

같은 아파트 다른 동으로 넓혀 가서 한동안 살았다. 

아마 아이들의 유년은 행복동에서의 기억이 대부분일 거다.


 갑자기 사업을 하게 되면서 근처 전원주택에서 오래된 연립으로.

신축 아파트 입주 후 오래 살지도 못하고 사정이 생겨 

이웃동네 오래된 저층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때 기분은 참 아렸던 기억이다.

하늘에서 땅으로 주저 앉은 기분이 있다면 그런 기분일지도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미안했던 시절이었다.


그러고 보니 집이란 건 경제력의 척도가 맞긴 맞는 것 같다.

형편이 좋으면 좋은 곳에 살다가 

상황이 변하면 어쩔 수 없이 덜 좋은 곳으로 이동하며 산 내 흔적을 보면. 


지금 사는 동네에서 3년 6개월을 살다가 이번에 이사를 왔으니 몇 번인가?     

세어봐야겠다.

12번째 집인 것 같다. 많이도 다녔다.


집을 넓혀 간 적도 있고

줄여 간 적도 있는 걸 보니 내 삶도 참 드라마틱했던 것 같다.     

이 집에서는 또 얼마나 살 수 있을까?

몇 년이나 살 수 있을까? 사뭇 궁금하다.


맘 같아선 한 5~6년은 살았으면 좋겠다.

그때쯤이면 정년을 할 것 같고

새로운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세 주고 온 우리 집이 재건축을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두 딸 중 한 명은 출가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암튼 새로 만난 오래된 이 집과 당분간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

'잘 살아보자. 307호야'


오늘밤은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편안한 꿈을 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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