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귀촌 6년 차 텃밭 관리자가 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by 민들레

화병에 꽃 하나 꽂아두는 감각도 없던 심지어 화분하나 키워본 적이 없는 내가 정말 몰라서 들어온 시골이다.

나는 텃밭을 원했는데 이것은 텃밭이라고 하기엔 본격적인 농사의 시작이었다.

무식하니 용감했고 옆집 뒷집 커닝해 가며 지은 농사가 이제 6년 차.

신랑에게 매번 "이게 텃밭이야? 나는 정말 상추 몇 포기, 고추 몇 개 이렇게 매일 가서 먹거리 조금 공수하는 걸 말한 거지 이게 어찌 텃밭이냐고!"투덜거렸다.

이랑에 비닐 씌우는 일도 신랑의 출근과 함께 병행하다 보니 일주일이 걸리고 각 작물의 모종을 사 오거나 만들거나 심는 일까지도 겨우겨우 근근이 늦은 시기에 허겁지겁 따라서 심기 바빴다. 심는 것도 늦고 수확도 늦고 그러니 중간중간 관리는 엄두도 못 냈는데 이제 정말 텃밭 둘러보듯이 하루에도 한번 이상 밭엘 가게 된다.


오늘은 이곳의 풀을 손보고 내일은 저곳의 풀을 손보면 그다음 날 비 와서 하루 쉬고 다시 무한반복.

아직 풀들이 무성하게 자랄 여름 전이니 풀과의 전쟁에서 이겼다고 할 수도 없고 약을 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길 수도 없는 싸움이지만 올해는 좀 다르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매일매일의 할 일이 있는데도 지난 5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수확물을 거두었다니 그 또한 은혜였구나 싶고. 분명 신랑이 답답했을 텐데 뭐라고 다그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기다려준 시간이 5년이니 새삼 속이 깊은 사람이구나 싶다.

본인은 일과 농사를 병행하고 나는 전업임에도 나에게 밭일을 더 하라고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

나는 그렇게 신랑을 배려하고 있었던가? 반성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내가 생각했던 크기는 아니었지만, 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지만 밭이 있으니 밭이 나를 농사짓는 사람으로 만든다. 아직 '꾼'자가 붙을 만큼은 아니고 나도 이것으로 이득을 취하는 일이 없으므로 허울뿐인 농업경영인에서 올해는 그래도 텃밭관리자쯤으로 승격했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상추 모종을 한데 옮겨 심었다. 중간중간 비는 자리에 풀나지 말라고 급한 대로 상추를 심었는데 주변에 작물들이 자라면 너무 안쪽에 자리 잡은 상추를 따러 가는 것도 버거워지니 내가 늘 지나다니는 길 앞쪽으로 옮겨 심었다. 우선 작물을 심을 이랑에만 비닐작업을 하고 이것저것 심어두었는데 중간중간 걸어 다니는 길에도 풀들이 지천으로 나기 시작해서 오늘은 다니는 길 비닐작업도 마무리했다.


봄이 지나가는 끝물. 쪽파만큼 자란 아까운 달래를 마지막으로 캐면서 올봄은 이번 달래가 마지막이겠다. 가을을 기약하자고 인사했다. 캔 달래와 자리를 옮기며 솎은 상추를 한소쿠리 가득 채워 들어오니 어쩐지 내가 원했던 그림이 이거였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무리가 기분 좋은 하루였다.



keyword
이전 27화뽑고 뽑고 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