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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깨달은 일

나는 나고... 일상은 이어진다.

by 민들레

10여 년쯤 전에 회를 좋아하는 엄마를 모시고 바닷가에 갔던 때가 있다. 대하가 철이었는지 무언가 제철인 무엇을 먹으러 갔는데 기억에 남는 건 멸치를 털고 있는 배였다.

묵묵히 정말 까맣게 탄 피부를 보여주며 멸치를 털고 있는 분들과 그 광경을 바라보는 내가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놀러 여기에 와 있지만 저분들은 이곳에서 일상을, 삶을 살아가는구나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강렬했다. 신혼여행지에서도 나는 휴양지로 신혼여행을 간 거지만 그곳의 많은 사람들은 그곳이 치열한 삶의 터전인 것이다.


조직검사를 예약하고 마음이 심란했는데 내 마음과는 별개로 나의 할 일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예약을 잡았든 어쨌든 내가 차려야 할 끼니가 있고 집안일이 있다는 게 헛웃음도 났지만 묘하게 위안이 되었다. 나에게 어떤 일이 생긴다 해도 나나 또 나의 아이들이나 자기만의 일상을 살아가겠거니 싶어서 쌀을 씻는 동안 눈물이 났고 슬펐지만 감사했다.

나의 마음이 전쟁 중이어도 나의 아이들은 평안하다.

그저 엄마는 오늘도 똑같은 잔소리쟁이이고 나의 병원 스케줄과는 별개로 신랑은 신랑의 출근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


바닷가에서 일하는 그들 덕에 나는 여행을 누릴 수 있었을 거다. 휴양지에서 근무하는 누군가 덕분에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기만 해도 되는 생의 몇 안 되는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반대로 멸치를 사 먹는 사람이 있으므로 멸치를 잡는 일로 생계를 누릴 수 있고 휴양지에 오는 사람들로 인해 그 사람들의 삶이 유지되기도 할 것이다.


내가 차리는 식사와 빨래로 내 아이들의 삶이 유지되기도 하겠지만 아이들이 걱정 없는 표정으로 잘 먹고 잘 놀고 많은 빨래거리를 만들어주니 내 근심 어린 일 가운데에서도 일상처럼 묵묵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나의 감정이나 처지와는 상관없이 일상은 늘 그렇게 고요히 흘러 힘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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