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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불평을 잠재우는 매우 작은 것

이거요! 이렇게 간결한 선물인사라니!

by 민들레

동네 아이들에게 유행의 바람이 한차례 불었다.

바로 자전거 타고 동네 한 바퀴의 바람이다.

딱히 특별한 학원 하나 마땅치 않은 시골 학교에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도 시간이 많이 남는 아이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해서 자전거를 탄다. 초봄에 시작한 자전거 타기의 물결은 금방 사그라들지 않고 6월의 중순까지 시간 날 때마다 땀 흘려가며 타고 있다.


작은 시골마을의 특성상 아이들은 어린이집부터 쭉 같은 인원으로 유지되는데 우리는 중간에 초등학교 입학으로 그 아이들의 조합에 끼어들게 되었다. 그나마도 바로 같이 움직이고 활동할 수 있었으면 좀 나았으려나 싶지만 우리 아이들의 입학 후 코로나가 시작되어서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이 더더욱 차단당했다.

온라인 수업의 기간부터 철석같이 쓰고 다니던 마스크, 그리고는 마스크를 벗는 것도 어색했던 시절을 지나 이제 아이들도 서서히 녹아들어 가고 있으나 여전히 외인 같은 포지션인 게 늘 마음에 걸렸다.


나의 아이들이 인싸로 자리 잡기를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나에게 이번 자전거 타기 유행은 하나의 기회였다.

자전거로 움직일 수 있는 동선의 중간에 우리 집이 있는 데다가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이 각각 한집에 1~2명인데 비해 우리 집은 3명의 아이들이 합류하는 핫스폿이 되다 보니 학년불문 성별불문의 아이들이 우리 집부터 무조건 모이기 시작해서 적게는 4명. 많게는 13명이 넘게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는 것이다.(13명이면 여기 학교 한 학년의 총인원보다 많은 인원이다)

그 모든 아이들이 우리 집에 와서 물을 먹고 간식을 먹는다.

정수기가 있었으면 조금 달랐겠지만 우리는 정수기가 없고 물을 사서 마시는 터라 그 아이들에게 매번 작은 생수병채로 물을 주는 게 슬슬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13명이 물 한 병씩 먹으면 13병인데 주말에 6시간도 넘게 타다 보면 3번까지 먹는 아이들도 생겨난다. 이 물들을 또 냉장보관해서 줘야 하니 그것도 일이고 물 자체를 자주 사다 날라야 되는 상황이 되었다.

물 하나 주는 것이 물 하나가 아닌 것이 되고 대용량의 과자들이 하루에도 몇 박스씩 사라지는 것이 신경 쓰이게 되면서 깨달았다.


아이들이 인싸가 된다는 건 우리 집이 핫스폿이 된다는 것이고 내가 인싸엄마가 되어야 된다는 걸.

그렇게 좋은 마음으로 시작해서 부담을 가지고도 물과 간식을 사다 날랐다.

시작이 반이라 하니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물 챙겨주기가 간단한 간식에, 사소하게 다치는 아이들의 소독과 밴드 붙이기까지 늘어나고 덩달아 짜증이 생기던 차였다.

말 그대로 물 하나 챙겨주는 걸 알아주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그런데 주는 나는 한두 명이 아닌데 아쿠아밴드 사이즈별로, 메디폼도 사이즈별로 또 몇만 원어치 사다 쟁여놓으면서 이걸 누가 알까 싶은 거다.


부글부글 대던 나의 큰 불만을 잠재운건 노란 장미 한 송이.

자전거를 가장 열심히 탄. 그러니 결과적으로 가장 많은 물과 과자와 밴드를 붙인 아이에게서 받은 선물이다.

"이거요!"하고 장미만 하나 내밀고는 자전거 타고 사라졌다.

그 장미 한 송이에 내 커다랗던 불만이 사라져 버렸다. (장미의 출처는 그 아이네 집이라고 한다).

새삼 그 꽃이 아까워서 급히 음료수병에 담아서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참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났던 건지 스스로 웃기다고 생각이 들었다.

장미향이 은은하니 딱 좋았다.

누가 알아줄까 싶어서 안절부절못하고 부글부글하던 마음이었는데 한 사람만 알아주면 되는 거였나 보다.


나도 마음을 다스리려면 아직 까마득하게 멀었다.

역시나 인싸의 길이란 애나 어른이나 쉽지 않은 길임을 알았다.

의외로 작은 선물이 큰 불만을 잠재우기도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부디 자전거의 유행이 오래 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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