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할 일을 알아버렸다

마당에서 고구마줄기 까면서 한 생각

by 민들레

아이가 졸업여행을 떠나는 아침이다. 어떤 행사든 가장 큰 플러스요인은 날씨인듯한데 오늘 너무나도 청명한 가을하늘에 마당에만 앉아 있어도 선선하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거기에 친구들과 여행이라니 이번 수학여행은 이미 행복한 여행이 되리라 기대해 본다.

평소에 아이들을 깨우지 않는데 8시쯤 이제 그만 일어나라고 말을 해준다. 그래도 일어나지 못해서 미적미적 데다가 30분 안에 준비를 해서 갈 때도 있고 5분쯤 지각할 때도 있고 그렇다. 학교 바로 앞에 살면서 지각이라니 웬 말이냐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아침독서시간은 괜찮다며 수업 전에만 가면 된다고 늦장을 피운다.

그런 녀석이 오늘 수학여행을 간다 하니 7시에 일어나서 밥을 먹는다.

역시나 여행은 여행이구나 싶어 속으로 웃음이 났다.

온통 검정옷만 챙겨가는 막 사춘기의 초입에 있는 아이라 궁금한 나의 마음을 속으로 숨기고 아침만 차려주고는 미리 마당에 나가서 고구마 줄기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밥 먹고 양치하고 여행가방까지 챙긴 아이를 마당에서 배웅하고 그저 무심히 할 일을 하는 척 사실 나는 아이들이 출발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안 보는 척하고 손은 작업에 집중한 채로 운동장을 살피고 드디어 차가 출발하는 모습까지 봤다. 혹시나 아이가 창문으로 나를 알아보나 싶어서 곁눈질해 봤으나 아이는 나에게 관심이 없다. 아마 출발을 막 시작하였으니 선생님께서 주의 사항을 말해주고 있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멀어져 가는 차의 뒷모습까지 보고 나서야 아이가 잘 갔구나 싶어 다른 일을 시작했다.


오늘 아침의 이런 일련의 일들이 앞으로 내가 쭉 해야 할 일이겠구나가 갑자기 깨달아졌다.

아이는 점점 나의 관심을 버거워할 것이고 나는 마치 그저 내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언제든 볼 수 있게 마당에서 내 일 하면서 아이에게 관심을 보내는 것. 언제든 나는 그곳에 있음을 은연중에 알리는 것.


그래 그렇구나. 점점 커 가며 자립하는 아이에게 나는 아닌 척 내가 나갈 수 있는 최전방(?)에서 아이들을 마중해야겠구나.

핸드폰이 아직 없는 아이들이라 그저 2박 3일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하는 차에 옆집 아이 엄마가 아이들이 숙소에 잘 도착했다고 알려주었다. 핸드폰 위치추적이 되어서 리조트에 있다고 사진을 캡처해서 보내주었다. 그래서 '그래 역시나 잘 있구나' 그렇게 마음 다잡았다.

아이가 오기 전까지 열심히 고구마줄기를 다듬어야겠다. 요즘 고구마줄기는 아이가 제일 잘 먹는 반찬이기 때문이다. 잘 다녀와. 난 여기 있을게. 언제든 그럴게. 내가 할 수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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