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지면 무뎌지는 사실들
낫질하다 '피' 보고 깨달은 것
전원주택살이 합이 20년 차여도 친정에 살 때는 낫을 들어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엄마가 부탁할 때 삽질 정도.
아이들과 귀촌해서 내 텃밭을 꾸리게 되니 약을 치지 않으면 풀과의 전쟁이 시작인 거였다. 신랑이 중간중간 예초기를 돌려서 깎긴 하지만 예초기가 가기 어려운 구석구석에도 풀은 여지없이 자라므로 내가 낫을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처음에야 정말 낫 놓고 기억자를 모르는 게 아니라 기억자는 알아도 낫을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슬금슬 금하다 보니 내깐에 제법 풀이 잘 베어지는 거다.
무시무시한 생김으로 겁을 먹었던 것과는 달리 그저 슥슥 베이는 풀냄새가 좋아서 가끔 낫질을 했다.
풀은 심지 않고 가꾸지 않아도 무시로 잘 자라지만 특히나 이렇게 장마철 비 듬뿍 오고 난 뒤에 자라는 건 상상이상이다.
물을 듬뿍 먹고 풀들이 억세게도 잘 자란 상황이라 낫질을 해도 잘 베어지지가 않아서 끙끙대며 풀을 베며 좁은 옥수수밭 사이에서 이동하다 보니 낫으로 왼쪽 손등을 살짝 건드렸는데 피가 주르륵.
피를 보고 나니 그제사 새삼 '아 맞아 낫이 칼이었지'가 깨달아지는 거다. 풀이 억세니 잘 베어지지 않는다고 낑낑대느라 무뎌졌을 뿐 낫은 언제나 잘 벼린 큰 칼이었던 것.
처음에 무서워하던 것도 온데간데없이.
늘 쓰다 보니 너무나 무뎌졌던 거다. 낫이 칼이란 것도 잊어버리고.
비단 낫뿐이 아니다. 결혼이란 것도 그렇고, 취업이라는 것도 그렇고 심지어 아이들에 관한 것도 어디 처음 마음 그대로 오랜 시간 유지한다는 게 쉬운 일이랴? 하여 가끔은 이런 이벤트가 한 번씩 있어줘야 처음 마음을 기억하는데 도움이 된다.
낫은 칼이고 위험한 물건이다.
너무 소소히 다치고 초심을 깨달아서 감사하다.
다른 일도 너무 큰 이벤트가 없을 때. 작은 거에도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의 민감성을 가질 수 있길 기도해 본다.
더불어 매번 군소리 없이 예초기를 돌리던 신랑에게도.
자기 할 일 다 마치고 8시 30분 들어가 주는 아이들에게도 고마워하자 라는 마음을 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