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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속도대로 간다

숫자들에 무심해지기.

by 민들레

집 근처에 복합문화센터가 생겼다. 아이들의 수업도 자주 있고 1층엔 도서관도 있어 아이들 수업하는 동안 대기하기도 좋아서 자주 이용하게 되었다.

애들이 2층에서 만들기 수업만 들을 때는 몰랐는데 운동수업을 들으며 3층 체육관에 가보니 작은 헬스장이 구석에 마련되어 있었다. 아줌마의 얼굴력으로 들어가시는 분께 어떻게 사용하는지 물어보니 운동화와 수건만 준비하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공간이란다.

2시간씩 책만 읽으며 기다리기엔 사실상 추워진 날씨라 운동화와 수건을 챙겨 들고 아이들은 수업에 나는 헬스장으로 들어갔다.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 틈에 섞여서 운동을 시작하는 나에게 일단 스스로 놀랐다. (나이 먹음을 실감했다.)

예전에는 누군가와 눈을 마주칠까 싶어서 버스에서 뒷자리로 얼굴 한번 돌려보지 못하고 앞만 쳐다보다 내리곤 했는데 이제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성별과도 상관없이 내 일을 잘할 수 있다. (아저씨만 4분 계실 땐 나온 적도 있는데 이제 2~3분 계시면 그냥 내 운동을 한다. 하다 보면 여성분도 가끔 와주시므로 민망하지 않다.)


연달아 배치된 트레드밀은 4대가 운영되는데 가장 오른쪽 창가 자리는 3층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을 볼 수 있어서 가장 인기 있는 자리이고 나머지 3대의 자리는 오로지 하얀 벽을 보며 달려야 하는 자리이다.

처음 간 날은 창가자리가 비어 있어서 사용하기도 했고 벽만 보며 달린 날도 있었다.

오늘은 가운데 자리에 끼어서 양 옆에 두 분과 같이 운동을 하는데 나보다 연세가 있으신 두 분이 어찌나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달리시는지 부럽기도 하고 나도 한번 해 볼까 생각이 들었지만 걷는 것만으로도 족저근막염이 왔던 전적이 있던 터라 그저 빠르게 걷는 것만 우선 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양옆의 사람들이 뛰는 소리, 그들의 머신에 표시된 숫자들을 힐끗힐끗 쳐다보다가 오로지 내가 서 있는 트레드밀의 보드판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나는 내 속도로 걸으면 되고 내가 할 만큼의 시간을 채우면 된다.

숫자들을 비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들의 운동력과 나의 운동력이 다르고 그들의 몸무게와 나의 몸무게가 다르듯이 운동량도 제 몫만 하면 되는 것일 텐데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요즘 핸드폰 사용제한 중이라서 다른 사람들처럼 헤드셋 끼고 핸드폰을 보면서 달리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벽만 보고 30분을 열심히 달리다 보면 내 뒷목쯤에도 땀이 나는 것이 느껴진다. 영하 15도라는 이 날씨에 말이다. 오늘 35분을 운동하고 소요된 칼로리는 250칼로리였다.

운동을 마치고 아이들 간식으로 챙겨갔던 과자에 손이 가 버려서 한 봉지를 먹고 나니 힘들게 뛴 30분이 무색하게 과자는 3분 만에 100칼로리가 되었다. 그저 웃음이 나면서 연예인들이 운동하기 싫어서 안 먹는 게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다. 아직 실천은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래 내 스타일대로 해보자. 건강한 돼지면 어떠랴. 즐겁게 운동하고 맛있게 먹고 부디 몸의 어디 한 군데 이상 수치만 뜨지 않는다면 조금 뚱뚱하다한들 나는 행복할 수 있다. 물론 옷 살 때만 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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