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온다는 것은 잡초와의 싸움시작.
겨울 추위에 마늘을 보호하기 위해 비닐을 쳐 두었는데 마늘뿐만 아니라 다른 잡초들도 그 안에서 무성하게 자랐다.
냉이는 벌써 꽃대를 올린 녀석도 있고 그 외 이름 모를 많은 잡초들을 하나씩 뽑아준다.
조금 더 확대한 크기의 우담바라 같은 가녀린 망초대의 어린싹도 방치하여 키가 자라는 날에는 마늘을 밀어내고 과장을 조금 보태 나무로 자란다.
어떤 잡초들도 처음부터 그런 무서운 크기를 자랑하진 않는다.
콩나물 꼬리보다 가늘어서 뽑으려고 두 손가락으로 집으려고 해도 미끄러질 만큼 약하다.
그렇게 보잘것없던 녀석이 '앗차'하는 순간 엄청난 사이즈를 자랑하며 내가 필요한 농산물의 자리를 대신 차지해 버린다.
마음의 불편함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작디작은 불편함이어서 무시하고 살다가 어느 순간 나를 집어삼킬 만큼 커다란 불편함으로 자라는 게 다반사다.
작은 불편함에서 더 이상 자라지 않도록 어릴 때 잡초를 뽑아주듯이 마음을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 같으면 끙끙 앓다가 말았을 일인데 이제는 용기를 내서 의사표현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밭의 잡초만 뽑을게 아니다. 마음의 잡초 감정들도 더 커지기 전에 정리해야 한다.
그래 배웠으니 실천해야지. 하루 한 번씩은 이랑을 꼭꼭 밟으며 길을 내고 새로 생겨난 잡초를 뽑고 있다. 매일 가도 매일 새로운 잡초가 생긴다. 처음 농사를 질 때는 심어만 두고 한 번도 더 들여다보지 못했는데 잡초를 이겨내고 경작을 할 수 있었던 게 은혜라는 생각을 요즘 매일 조금씩 잡초를 뽑으면서야 한다. 옆의 농사꾼들께서 얼마나 우리 밭을 보며 한숨을 쉬셨을지도 새로 이사 와서 풀을 키우겠다는 건지 작물을 심겠다는 건지 얼마나 애가 타셨을까.
심어서 둔다고 절로 자라는 건 아무것도 없다.
심지 않고 저절로 자라는 건 잡초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