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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노래 Oct 23. 2021

사랑의 역사 #3

대화하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사랑은 시작되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사랑에 자격증 같은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인생의 아이러니는 진짜 중요한 것들은 준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첫인사, 친구, 대화, 가족, 꿈에 대한 것들을 가르쳐주는 자격증 코스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부딪치고 깨어지고 배우든지, 부딪치고 깨어져서 그대로 있든지 할 뿐 이었다. 그렇게 아무런 준비없이 시작된 사랑은 당연하게 부딪치고 깨어졌다. “사랑해”라는 직접적인 언어 이 외에는 표현할 줄도 이해할 줄도 모르며, 싸움의 기술같은 것은 있을리가 없는 나에게 사랑은 분에 넘치게 광활하고, 버겁게 무거웠다. 달콤함으로 견디기엔 내던지고 싶은 이유가 훨씬 많았다. 맞지 않는 호흡, 이해를 갈망하는 눈빛, 받는 만큼 줘야하는 철저한 give&take 반복, 이유를 알 수 없는 순간과 이유마저 궁금하지 않는 순간들이 쌓여 발목을 칭칭 감았다. 발목의 무게는 마음으로부터 끌어올리려는 이해와 사랑의 미소를 끌어내리더니 급기야 키스를 위한 발돋음과 손을 잡기 위해 내미는 팔마저 묶어버렸다. 꽁꽁 묶인 채 눈만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모든 일을 관망했다. 더이상 마주하지 않는 눈, 소음을 듣는 듯한 귀, 설렘없는 코, 짧은 언어만을 뱉는 기계적인 입. 모든 것이 나와는 관계없는 일 같았다. 마침내 모든 것에서 생기가 사라지고 차가운 평온만이 가득했을 때 후회가 차올랐지만 발목의 무게는 그마저도 삼켜버렸다. 이제 유일한 소원은 그가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발목의 무게가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 것이 되었다. 그래서 부디, 반짝이는 별, 아침에 쏟아지는 빛, 노을이 오기 전에 부는 산들바람, 각성으로 가득한 까만 밤을 지그시 눌러주기를. 순간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기를. 찰나의 미련도 용납하지 않기를. 숨 한번의 그리움도 느끼지 않기를. 그렇게 사람이 좋아지는 불행이 다시는 다가오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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