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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노래 Oct 25. 2021

사랑의 역사 #4


동경했던 삶이 딱히 있는 것은 아니었다. 끊기지 않는 핸드폰과 크게 거슬리지 않는 라테를 파는 카페와 넷플릭스 구독만 있으면, 그다지 필요한 것이 없었다. 대화는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 하느니 독백이 나았고, 대부분의 조언은 삶에 대한 넘치는 간섭이었으며, 밥이라도 같이 먹으려면 세상을 구하는 회의라도 되는 것처럼 의견을 나눠야 하는 것이 싫었다. 이런 것들을 뺴고 나면 남는 것은 몇가지 되지 않았다. 아, 맞다. 음악을 잊을 뻔했다. 모든 일엔 bgm이라도 있어야 덜 불행하고, 더 기쁜 법이니까. 너를 선택한 이유는 단지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음악소리 같았기 때문이다. 적당한 높낮이, 주제에 따라 반복되는 빨라짐 그리고 느려짐, 강조하는 낮은 톤, 마무리하며 나의 기분을 살피는 높은 톤. 살면서 필요한 것들 중에 음악을 빼도 될 정도였다. 게다가 넷플릭스보다 재미 있을 때도 있고, 라테보다 숨통을 틔워줄 때도 있었다. 모든 것을 합쳐놓은 남성용 로션이랄까. 기능성이 의심되지만 실용성 하나로 충분히 매력적인. 나는 결국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을 선택했다. 그건 사랑에 눈이 먼 선택이 아닌, 미니멀라이프 추구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경제적인. 그 간결함과 실용성을 깨닫고 선택한 자신이 자랑스러울 정도였다. 유일한 걱정은 모든 일의 원인이 사랑이라고 믿는 너의 믿음이 약해지는 일이었다. 사랑과 질투를 적절하게 배합한 설교, 모든 것을 내어줄 듯한 기념일, 권태에 빠지지 않도록 희생을 요구하는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끊임없이 반복하고 강도를 높여가며 너의 믿음을 주시했다. 계속 날 사랑해, 믿음을 멈추지마, 이야기를 말해, 내게서 손을 떼지마. 햄스터가 돌리는 쳇바퀴처럼 어떤 날은 숨 가쁘게, 어떤 날은 숨도 못 쉬게 너의 믿음에 매달렸다. 어느 순간 핸드폰과 라테와 음악이 다시 필요한 아침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이제 다시는 그것들이 그전같지 않다는 것을. 카페를 찾아 성수동과 종로와 이태원을 헤메여도 견딜 수 없는 라테 뿐이라는 것을. 밤을 새우고 다시 낮을 새우며 넷플릭스를 봐도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음을. 노이즈 캔슬링에 끝까지 볼륨을 올려도 아무 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음을. 필요한 건 너 뿐이라는 것을. 내가 한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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