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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레스미 Nov 13. 2024

칼빵의 추억

15년 전,

2009년 11월 12일.


배를 쨌더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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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사이판 무박 3일의 스케줄이 있던 날

희한하게 비행이 너무 가기 싫었다.




늦장 준비를 꾸역꾸역 하다가

육감에 이끌려 임신 테스트기를 사 왔다.

희미하지만 두 줄 확인.




바로 회사에 전화해서

스케줄을 뺐다.

(승무원들은 건강과 안전을 위해

임신을 확인 한 그 순간부터 비행정지다.)




다음 날.

동네에 삐까번쩍하게 새로 지어진

멋진 건물의 산부인과로 향했다.




의사가 초음파를 보더니


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화면을 가리키며


아... 아기집이 두 개네요.

쌍둥인데요...!


전혀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다.




의사는

말 중간중간 자꾸 한숨을 쉬었다.

의자에 기대어 뒤로 젖혀 앉은 채

불치병이라도 선고하는 듯한

심각한 표정이었다.




앞으로 많이 힘들 거라고 한다.

조심할 것도 많다며

나보고 각오를 하란다.




웃는 얼굴 한 번을 안 보이고

축하한다는 말조차 않던 의사 덕에

나 역시

쌍둥이 임신이 반갑지 않았다.




집에 와서 2시간을 울었다.

나에게

뭔가 잘못된 일이

일어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병원을 바꿨다.

쌍둥이를 잘 받기로 소문난 의사였다.




첫 진료가 있던 날

왠지 모를 긴장감과 불편함으로

두리번 걸렸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아마도 그전 의사 때문이었겠지.




하지만

새로 찾아간 의사는

날 전혀 다른 세상으로 올려놨다.

말 한마디, 표정, 손짓, 세심함과 배려..

의사의 모든 것은

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만들었다.




도대체

그전 병원의 의사는 왜 그랬던 걸까?

지금도 모르겠다.

초짜였나??




쌍둥이는

초기 유산의 걱정이 끝나는 날

조기 출산의 위험이 시작된다.

의사는

최소 35주 까진 버텨야 한다고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배는 사람의 배가 아니었다

사람의 가죽이

이렇게까지 늘어날 수 있구나 싶었다.




어느 날부턴가

누워 잠들지 못해

소파에 앉아서 자는 게

일상이던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뭔가 흐르는 느낌이다.




그럼 이게 양수라는 건가?

그럼 병원에 가야 하는 건가?

그럼 오늘 애를 낳는다는 건가?

그런 건가??




오빠 나 병원 가야 하나 봐

양수가 터진 거 같은데..?!




어리둥절인 나

멘붕상태인 남편




새벽 6시 반쯤이었다.

지갑 하나 달랑 들고 응급실로 향하면서

주 수를 확인해 보니

오늘이 딱 35주 +0




와.... 이거 뭐냐...!




응급실로 올라갔다.




나밖에 없는 건가??

너무 조용해서

우리의 등장이

그곳의 공기를 다 깨부수는 느낌이었다.




테스크에는

한 명의 간호사가 앉아있었다.




배가 불뚝한 펭귄이

뒤뚱거리며 다가가는데

간호사는 그게 안 느껴지는 걸까?




그 펭귄이

앞에 서서 그림자를 드리울 때까지

간호사는 모니터만 보고 있었다.




양수가 터진 거 같아서 왔는데요




나의 말을 듣고도 그녀는 태연하다.

종이를 내밀며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으라 했다.




아..!

양수가 터지는 일은

나에게만 놀러 운 일이구나

그래 여기 있으면서

얼마나 많이 봤겠어

일상이지 일상.

이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 게 당연하겠다

뭐 그냥

오늘도 시작이구나~싶겠지.




내가 내민 종이를 받더니

잠시 뒤쪽 의자에 가서 앉으랬다.




뒤로 돌아 서자

키보드 치는 소리가 들린다.

타닥타닥닥..




배가 불뚝한 펭귄은

이제 겨우 의자에 도착해

막 엉덩이를 붙였다.




그 순간

그 간호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와 눈을 마주쳤고

그녀가 앉아있던 바퀴 달린 의자는

자기 영역을 벗어나고 있었다.




ㅇㅇㅇ님 맞으신 거죠?




하면서

축지법으로 다가온 그녀는

동료를 부르더라.

다른 간호사가 더 있는지

그제야 알았다.




지금 바로 안쪽으로 가실게요




하더니

두 명의 간호사가

양쪽에서 내 팔짱을 꼈고

나는 연행되었다.




따라오려던 남편은

대기하라는 말에 얼음 상태.




그 덕에

뒤뚱거리던 펭귄은

오랜만에 사람처럼 걸어봤네.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두 간호사들은

부랴부랴 이것저것을 확인하더니

배에는 기계를 달고

팔에는 주사를 달고

바쁘다 바빠




누워서 남편과 생각해 봤다.




뭐야? 갑자기??




펭귄이 왔나 하더니만 사람대접이다.




아하..!

그냥 평상시처럼

아, 애 낳으러 왔구나~

양수가 터졌나 보구나~

오늘 이렇게 또 시작이구나~

하면서

가볍게 이름이요?




근데




엔터를 쳤더니

쌍둥이인 데다가

예정일도 안 된 35주에

이미 양수는 터졌고

수술 예정 환자로 뜨는데

담당쌤은 학회 가셨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프라이즈~~~~~

잠이 확 깨셨으리라.




창밖으로

날이 밝아오고 있을 때쯤

어느 의사분이

커튼을 젖히고 들어오셨다.




손을 비비며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시는데

목소리만 들어도 딱 유쾌한 의사 느낌.

자리를 비운 담당의 대신

수술을 하실 거라고 한다.




이럴 거면

쌍둥이 전문의 왜 찾아온 거냐고..




수술실로 향했다.

난 그렇게가 끝인 줄도 모르고

남편에게 쿨하게 인사를 하고

떠났더랬지




잠시 후




난 누구 여긴 어디..?

본능적으로 만져 본 내 배는

납. 작. 했. 다.




끝났구나!




아이들은 잠시 호흡 조절이 안되어

바로 인큐에 들어갔고

입원 내내 아무도 면회를 하지 못했다.




수술을 한 탓에

가스가 나와야 밥을 준댄다.

덕분에 거의 이틀을 굶다가

약으로 해결하고 끝을 봤다.




굶는 동안

제일 생각났던 음식은 바로

빼빼로였다.




병원 실려오기 하루 전은

빼빼로 데이였다.




남편은

커다란 빼빼로 과자를 사 왔고

아껴 먹겠다며

남은 하나를

식탁에 고이 올려두고 잤는데

눈뜨자마자 응급실 직행.




내 빼빼로!!!




그걸 다 먹었어야 했다는 생각만

천만 번.




그렇게

새벽에 둘이 뛰쳐나갔던 집으로

일주일 만에 네 명이 되어 돌아왔다.

.

.

.

.

.

매년 생일이 되면

미리 풍선을 주문해 놓고 꾸며 준다.



야금야금

하나씩 커져가는 숫자.

11월 생이니

끝물이 다 돼서야 제 나이가 된다.




낮 동안 준비했던 음식을 차려내고

모두 함께 둘러앉는 시간이다.

차리고 나니

내 하루가 보이는 순간이네.



후식은 당연히 케이크.

우리 집은 케이크도 홈메이드다.




올해는

특별히 요청하신 디자인으로 도전.

빵만 구워주고

본인들의 수작업으로 완성시켰다.



하루가 참 길구나.

역시 마무리는 맥주지.




한인마트에서 사 온 빼빼로를

똑똑 끊어 먹으며 하는

음주 포스팅이다.








내가 누군지 알아?!


나!

칼빵 있는 여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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