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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2. 3

by 블레스미

그가 화투판을 엎어 버렸다.




내 오판이 맞다고
한 번만 넘어가 달라고
다음엔 나도 봐주겠다고




진심으로 부탁하고
진심으로 빌었으면
그 판의 사람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물론
째려보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다음은 내가 될 수도 있으니
계산된 이해였을지언정
고개를 끄덕였을 거란 말이다.




하지만 그는,
빌어보지도 부탁하지도 않았다.




그가 한 건
오로지




왜 내 패만 그지 같으냐
너희끼리 짜고 치는 거 아니냐
내가 질리 없다 점수를 다시 매겨봐라
난 줄 돈 없으니 배 째라
나한테 이러면
내기 도박이니 잡아가라고
신고를 하겠다
.
.
.
.
.


결국
무엇도 소용없던 그는

에라 모르겠다며
화투판을 엎은 것이다.




본인이 패자라는 증거가 없도록.
내가 패자라고
사람들이 떠들 틈을 주지 않도록.




그럼
처음부터 다시
게임을 시작할 줄 알았겠지.




아님
엎어버리는 그 모습이
옆에서 지켜보던
7~80쯤 된 그의 할머니, 할아버지 눈에는

멋져 보일 거라 생각했을 수도.




이제
누가 다시 그와 화투를 치겠나.



지금도
본인은 억울하다 하고 있겠지만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다 안다.




설마설마했던
판까지 뒤집어엎었으니
되돌릴 수도, 잊을 수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도 없다.




이제
우리 동네
모든 아이들까지 알게 되겠네




그 아이의 아이도

그 아이의 아이의 아이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노라 전해질 것이다.




2024년 12월 3일
화투판이 엎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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