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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블레스미
Dec 31. 2024
나의 세잎클로버
뉴스를 보고 있으면
감정이입이 되어 마음이 무겁다.
희생자도
생존자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도
너무 힘든 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일상은
여느 때와 같이 이어진다.
산 사람은 사는 법이니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는 말이
이래서 나오는구나 싶다.
오늘은 30일
달력엔 검은색으로
월요일 칸을 차지했지만
연휴로 읽히는 날이다.
잠시라도
내가
연휴처럼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일찍 일어나는 거라고 생각했다.
늦게 잠들어 피곤했지만
죽을힘을 다해
눈을 부릅뜨고 몸을 일으켰다.
그랬더니
이 얼마 만의 1인 다방인가.
이 조용한 순간이 너무 좋다.
오랜만에
이웃들 집에 놀러 가기도 하고
글도 쓴다.
이 여유.
이 평온함.
지난 토요일
스키장을 갔었다.
올겨울
여행 대신 계획한
1박 2일 일정이었다.
남편은 싱글이었을 때
보드에 환장을 했던 사람이라
스키장이 익숙한 곳이었고
나는
그런 남편에게
잠시 보드를 배워 봤을 뿐
스키장에 대한
별다른 감흥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 대신
아이들이 생기면서
썰매장을 아주 사랑했더랬지.
그러니
아이들도 이번 스키장은
태어나 처음으로 가보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사실
이곳에 이사 오기 전 살던 곳은
겨울에 -40까지 내려가는
추운 곳이었다.
10월부터 4월까지
눈이 내리는 곳.
엘사를 체포하라는
농담이 통하는 곳.
그래서
스키장에 필요한 모든 복장은
갖추고 있던 참이었지만
눈이라는 거에 하도 질려서
돈을 내고 눈을 경험하러 간다는 게
기대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문만 열고 나가면
썰매든 스키든 스케이트든
지겹게 즐길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
아이들 만3살때 집 앞에 쌓인 눈. 이정도라면 믿으려나?
그런데
아이의 한 마디 말이
내 맘에 불을 질렀다.
엄마, 애들은 다 스키 탈 줄 안대!
나만 타본 적이 없어...
우린 질려서 안 간 거지만
여기 사람들은
눈이 그리워 찾아다니는 상황이니
그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무엇보다도
내 새끼만 못해 본 거라는 말에
꽂혔더랬다.
그래??!!!
그럴 순 없지.
그건 아니지.
어차피
여행 대신
할 거리도 필요했으니
가자! 가보자!
1박 2일 여정으로
계획을 짜고
아이들 강습과 장비 렌털을
예약했다.
숙소를 보니
주변 랏지는 예약이 다 찼네
이렇게나 비싼데
돈들도 많다 참.
호텔로 눈을 돌려
맘에 드는 방을 예약하고 마무리.
하루 전 날 짐을 마저 싸고
날씨를 확인했다.
하루 종일 비다.
67%의 확률이라고 써 있는 걸 보면
빼박일 듯싶다.
사실
며칠 전부터 확인할 때마다
비였긴 했다
근데 다 예약해 놨는데 어쩔 거야
못 먹어도 고 해야지.
아침 6시 출발.
역시나 비가 내리고 있었다.
도로를 보니
이미 전 날 밤부터 내린듯하다.
우리 넷은 부정 탈까 봐
혹은
초를 칠까 봐
서로를 위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비가 세차게 차를 때리고
와이퍼는 미친 듯이
앞 유리를 닦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 상황이 웃겨
혼자 고개 돌려 피식거렸지.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데도
비는 내렸다.
무표정이었던,
덤덤해 보였던 남편이
그제야 한마디를 뱉더라.
이거
스키가 아니라
수상스키를 타게 생겼구만
그 한마디가
얼마나 웃기던지
숨도 못 쉴 정도로
혼자 뒤집어졌었지..
근데
다 올라가면 비는 안 올 수도 있어
웃기고 있네...
이렇게 쏟아지는 게 뚝 그친다고?!
나를 위로하는구나 여겼다.
근데
오르면 오를수록
빗방울이 약해지더니
주차장에 들어설 때쯤엔
거의 멎은 정도!
와......
과학이다 과학이야!!
우아~~~ 세~~ 상에~~~~
어머나 진짜였구나~~~~~
산비탈을 오르면서
비를 쏟아낸 공기는
스키장에서
안개로만 남아 있었다.
문과 출신인 나는
이 과학이
너무나도 신기할 뿐.
스키 처음 타는
불쌍한 애들 왔다고
하늘이 도우셨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었지만
남편은
이 당연한 과학논리를??
하는 표정.
미리 예약을 해 놓았기에
착착착 진행이 된다.
첫날은
아이들 강습도 있고
타는 걸 지켜보기 위해
내 것은 렌털하지 않았고
둘째 날도
현장에서 상황 보고하자 싶어
렌털해 놓지 않은 상태라
눈으로 셋을 각기 쫓아가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사달이 났지.
햇병아리들 주제에
아빠가
보드를 타고 날아다니는 걸 보더니
눈이 돌아갔는지
겁 없이 댐벼 대더라.
몇 번은 말렸지만
입이 피노키오만큼 나온 아이들을
더 말릴 수가 없었다.
그래 기분 내러 왔는데 하며
모른척했지.
그러다
작은 아이가 넘어졌다.
넘어지면
그 충격으로
스키가 벗겨지는 게 정상인데
그러질 않는 바람에
무릎으로
데
미지가..
내가
들어갈 수 없는 구역이었다.
남편이 업고 내려와
의무실로 향했다.
업혀 오는 모습에
크게 잘못됐구나 싶었지만
아이는 울지 않았다.
그 앞에서
내가 호들갑을 떨 순 없었기에
놀란 아이에게
괜찮을 거라 말하며
나도 나를 진정시켜야 했다.
의무실에서는
아이에게 증상을 묻고
이리저리 만져 보더라
내 시선은
그 의료진의 입에
고정되어 있었다.
무슨 말이 나올까
너무 무서웠는데
다행히
이 정도면
괜찮아 보인다는 말을 뱉더라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지만
듣고 나니
확인 사살을 충분히 받고 싶어서
묻고 또 물었다.
움직임이 가능하고
본인이 느끼는 통증이 단순하니
응급차를 부를 일은
아니라는 설명.
부어오르긴 할 테니
얼음으로 찜질을 해주고
나중에 원하면
개인적으로
엑스레이를 찍어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선
괜찮을 거 같다고 했다.
마치
숨을 참고 있었던 사람처럼
숨을 몰아쉬게 되더라.
너무 긴 순간이었다.
정말
내가 기절하고 쓰러질 상황이었고
끝까지 말리지 않은 나를 탓하며
시간을 돌리고 싶은 상황이었다.
나의 정신 나간 표정을 눈치채고
엄마가 릴랙스해야 한다며
나에게 농담을 건넨
할머니 의료진과
이리저리
차분하고 섬세하게
살펴봐 준
젊은 의료진들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장비를 대신 반납해 주고
로비까지 이동도 도와주었다.
십년감수라는 게 이거구나.
하..
차라리 다쳐도 내가 다쳐야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덕분에
일찍 호텔에 돌아와
쉴 수 있게 됐다며
초긍정자가 되었네.
비 오는 날에 딱 맞게
티비보면서 과자 까먹고
침대 뒹굴 하는 이 순간.
마음까지 놓이니
이건 마치
천국에서의 호캉스.
그리고
다음날은
둘째의 렌털을
내가 사용하기로 하고
대타 선수가 되어
스키를 타게 됐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둘째는
혼자 얼음찜질을 하고
쿨링 젤을 바르며
하루 종일 핸드폰을 원 없이 했지.
윈윈이라고 해야 하나..?
넘어져 가며
온몸으로
타고났더니
이제는 가야 할 시간이다.
산을 내려오면서 보니
아래쪽은 계속 비가 내린 모양이다.
그것도 엄청.
내릴 만큼 내렸는지
한쪽 하늘은 파랗고
무지개도 걸렸더라
이내
해가 져 가면서
카메라에는 담기지 않는
장관을 안겨줬다.
이 아름다운 하늘을
평온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음에
너무나도 감사했다.
행복이
대단한 무언가에서 나오는 게 아님을
어느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마음속에 걸리는
모래알 하나 없이
오롯이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그 느낌이 나를 즐겁게 한다면
그게 행복인 거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안함이
행복이다.
네잎클로버를 찾겠다고
세잎
클로버 밟고 다니는 건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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