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한 달가량의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미국은
바삭한 햇빛이 가득이었다.
환승하는 시간을 합쳐
21시간 걸려 집에 도착하고 나니
집이 최고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
도착하자마자
그 많던 짐들을 싹 다 정리하고
청소와 빨래를 해댔다.
텅텅 빈 냉장고를 채우느라
마트도 종류별로 돌고 나서야
이제 됐구나 하고
소파에 철퍼덕이었는데
아.. 숙제가 하나 남았네?!
사모에게
도착했다는 보고 하는 것 말이다.
'소녀, 다녀오겠습니다' 하며
물러났었으니
알현하고
문안인사를 여쭈어야 하지 않겠냔 말이지.
한 달 동안
한국에 가 있는다는 이유로
안부전화도 면제였고
커피나 브런치 타임도 면제였는데
그 걸 다시 시작하려니 한숨부터 나왔다.
물론 대 놓고 요구한 적은 없다.
그냥
내가 두 다리 뻗고 자기 위해
알아서 기는 중이었던 거지.
"사모님, 저 블레스미예요~"
상냥함과 반가움을 한 바가지 얹었다.
다녀오느라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사모에게
밖에서 커피 한 잔 하자 신청했더니
강아지가 장시간 비행에 힘들었는지
아파서 두고 못 나가겠다며
집으로 오라고 하더라.
아.. 그럼 뭘 들고 가지..?
오랜만에 방문이고
한국 다녀온 거 뻔히 아는데
빈손으로 갈 순 없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생각해서
사 온 선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이 한국을 다녀온 입장이니
아쉬운 한국물건이 있을 리도 없고.
그러다
아이들 간식으로 사다 놓은
쿠키를 집어 들고 나섰다.
"그냥 오지 뭘 또 들고 와~"
"저 오면 항상 커피 내려 주시잖아요,
이거랑 같이 드세요"
오랜만에 만났다고
반가움이 더 큰걸 보니
그래도
가랑비에 정들었구나 싶더라.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신나게 주고받았다.
그러더니
"아, 맞다! 여기, 그 집 왔었어!"
"아,
그 새로 주재원 나온다던
이 차장네요?
벨기에 때부터 아시던 그 집?? "
"아니 아니~
내가 두 집 나올 거라 했잖아.
벨기에 이 차장 말고 다른 집이 여길 왔었어!
집 알아보러 미국 왔다가
우리 집에서 밥 먹고 갔다니깐"
그렇다.
여름이 되면 두 집이 더 나올 거라고
사모가 말했었다.
한 집은
벨기에 때부터의 인연으로
사모에게 주재원 발령을 부탁했던
이 차장과
그의 거짓말쟁이 여편네 J.
그리고 다른 한 명도
남편과 직급이 같은
염 차장이라는 사람인데
내 남편과 업무 파트가 같다고 했었다.
우리가 한국에 가고 없는 사이에
바로 그 염 차장이라는 사람과 가족이
미국에 집을 알아보러 왔었던 거였다.
나중에 남편에게 물어보니
경력직으로 들어온 사람인데
나이가
같은 자창급 중에 제일 많다고 하더라.
"애가 셋 이더라고.
다 딸인데 막내가 늦둥이야 늦둥이.
얼마나 애기짓을 하는지
1학년인데 밥도 혼자 못 먹더라니까"
아니,
우리는 집 보러 와서
계약만 하고 갔었는데
원래 이렇게 들러서
인사를 하고 가는 분위기였던 건가?
우리도 그렇게 했어야 했던 건가??
한국에서부터 들를 생각이었던 건지
선물까지 사 왔더라고 하더라.
아차.. 내가 놓친 거였구나..
다들 얼마나 날고 기는지
어지럽네 어지러워.
염차장 네 큰 딸은
사모의 외아들과
나이가 같았다고 한다.
"히야~~~
그 큰 딸 아주 대단하더라~~"
"왜요??"
"울 아들이랑 나이가 똑같은데
성격이 아주 딴 판이야"
사모의 외아들은
순하고 내성적이고 착해빠진 성격이다.
동갑내기(한국 나이 고1)라는 걸 알고
서로 인사를 시켜줬는데
사모집에 손님으로 온 그 아이는
소파에 다리 꼬고 눕다시피 앉아
야 야 거리며
사모 아들에게 말을 걸었더랜다.
사모 아들은
남에 집에 온 냥
멀찍이 쭈뼛쭈뼛 서서
눈도 못 마주치고
개미만 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고 말이지.
"걔가 또 뭘 했는지 알아?"
사모 아들에게
한국 걸그룹 이야길 했는데
모른다고 하자
갑자기
소파에서 번쩍 일어나더니
춤을 추더라는.
"어우야~~
다 큰 애가 가슴 흔들어가면서
섹시댄스를 추는 거야!
우리 애 아빠도
보다가 좀 그랬는지
딴 델 쳐다보더라고!!
내가 얼마나 놀라고 민망했는지 몰라~~"
"그 엄마 아빠는요?
딸이 자기 상사 앞에서 그러고 있는데
안 말려요?"
"어!
웃으면서 쳐다보고 있더라!
집에서 맨날 그러고 있나 봐.
막내는 또 얼마나 징징 대는지
1학년이나 된 애를 감싸 안고
어쩔 줄을 몰라하더라고"
내가 이상한 건가...?
아니,
사모도 당황스러웠다고 하니
보통의 정서에
위배되는 건 맞는 거 같은데
그들은
자기 딸이
직장 상사에게 재롱잔치를 하고 있다고
뿌듯해한 걸까?
다 큰 애가
남의 집 마룻바닥에서
가슴 흔들며 섹시댄스를 추는데??
내 기준에서
총체적 난국의 집이었다.
남의 집,
처음 보는 아저씨와 아이 앞에서
섹시댄스를 추는 아이나
그걸
웃으면서 쳐다보고 있는 부모나
도리도리.
처음엔
선물까지 들고 인사를 왔다는
그 집 이야기에 아차 싶었는데
그냥 오지 말지
와서 뭐 한 거냐 싶었다.
가만있었으면
본전으로 시작했을 것을
다 깎아 먹고
심지어 깎아 먹은 줄도 모르고
돌아갔으니 말이다.
상무네 집에
미리 약을 좀 치러 왔나 본데
그러다 그 약에 취해
그들 스스로 자빠져 버렸으니
나로서는 땡큐였다.
근데
밀려오던 걱정 한 가지.
내 남편이랑 같은 파트라고 하던데
이거 괜찮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