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거를 시작합니다.

by 블레스미

아이들의 학교 개학을 앞두고

막바지 여름의 햇빛이 절정이던 때

문제의 두 집이

1주일 격차로 미국에 도착했다.



그들의 미국 원정기는

남편과 사모를 통해 간간히 듣기만 할 뿐

내가 취하는 액션은 없었더랬다.



새로 오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누가 반겨주었으면 좋겠고

잘 모르는 낯선 곳이니

손 내밀어 주길 바라는 거 잘 안다.



내가 그랬으니까.



하지만

나에게 그랬던 집은 하나 없었고

오히려 도끼눈들을 뜨고 있었으니

그 꼬라지를 본 내가

'나는 그러지 말자,

나라도 환영해 주자'라는 마음이

생기겠냔 말이지.



심지어

사모를 통해

어떤 사람들인지

미리 힌트를 얻었던 참인지라

그런 마음은

미련도 없이 거둬들였었다.



그러다

사모가 자리를 마련하겠다며

본인 집에서 모이자는 연락을 돌렸고

그날,

나는

드디어 내 눈으로 확인하는구나 하며

사모 집으로 출발했다.



원래

약속장소에

여유 있게 도착하는 성격이라

일찍 출발한 데다가

집이 제일 가까우니

당연히 내가 일등이겠다 했는데

도착해 보니

사모 집 앞엔 벌써

주차된 차가 한 대 있더라.



누굴까 궁금해하며

초인종을 눌렀고

어김없이 강아지 짖는 소리와 함께

호들갑 떠는 사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모는 문을 열어주자마자

'들어와 들어와' 하더니만

바로 돌아서서

집 안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뭔데 이리 바쁘셔..?'



생각하면서

문을 닫고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거실 끝 쪽에

어느 한 여자가 서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민소매에

무늬 있는 긴 베이지 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나와 비슷한 키에 깡마른 체구였다.



얼굴에 살이 없어서 그런가

광대가 부각되어 보였고

표정은

좋게 말하면 예민한 듯 한,

나쁘게 말하면

차갑고 신경질적인 첫인상이었다.



내가 거실까지 들어오자

사모는 어디선가 다시 나타나



"자, 인사해!

여기는 이번에 새로 온 J야! "



다급하게 말을 쏟아내시더니

이내, 또 다른 방으로

급하게 사라지셨다.



그 여자다.



사모와

벨기에에서 주재원을 같이 했었고

두어 번 만났던 게 전부이면서

그 인연을 빌미로

언니언니 하며 접근하더니

아이의 한국 부적응을 이유로

본인 남편의 미국 발령을

내내 부탁했다는 그 여자.



독일에서

돈 내면 누구나 다 시켜주는

한 달짜리 피아노 연수를 갔으면서

꽤나 있는 척

유학을 다녀왔다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났다던 그 여자.



그 마저도,

그곳 한인교회에서 남편을 만나

연애하느라

얼렁뚱땅 다녔다는 그 여자.



온 동네에

이 말, 저 말 옮기고 다니고

지어내고 다녀

말로 다 까먹는다는 그 여자.



J의 남편은

내 남편과 같은 직급이지만

나이는 더 많고

독일 국적의 경력직 직원이다.

(자기 남편이 독일 사람이라는 게

J에게는 크나큰 자랑거리였다)



"아~~ 안녕하세요~~

오셨다고 말씀 들었어요"



최대한 착한 표정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허리 숙여 보이며

인사를 했더랬다.



"아, 네네 "



J는 짧게 고개를 까딱였고

지어보이던 옅은 미소는

금새 사라지더라.



양 손가락을 쫙 펼쳐 허공에 흔들면서

나에게 인사를 했다

마치

물을 털어 내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 순간,

방으로 다시 사라졌던 사모가

빠른 걸음으로 나오더니



"J야, 없어 없어.

어디다 뒀는지 못 찾겠다 야~~"



알고 보니

일찍 도착해 있던 J는

사모집에서

매니큐어를 바르고 있었던 거였고

(본인이 달라고 했는지

사모가 바르라고 했는지

그건 모르겠다)

생각보다 빨리 마르지 않자

손 선풍기를 찾고 있었던 참에

내가 도착을 했던 거였다

그러니 손 터는 행동을 했던 거였고.



"언니~~~~ 그럼 그거 없어여??

빨리 마르라고

손톱 위에 바르는 거~~

그거 있나 좀 찾아봐요!

빨리~~"



그 말을 들은 사모는

또 다른 곳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와....



내가 너무 보수적인 건가?

유교적인가??



서로 평직원일 때 만났지만

이제는 임원이 된 상사의 집이고,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

은인의 집이고,

오랜만에 만난 자리인 데다

처음 보는 다른 사람까지 있는

그 앞에서

사모를 사람 부리듯

이리 뛰고 저리 뛰게 하는 사람.



오케이.

난, 파악 끝.



손톱을 연신 불어대며

거실을 서성거리는 J와

더 이상 할 말 없이 마주 선 그때에

사모는 진짜 못 찾겠다며

동분서주를 멈추었다.



"J야!

못 찾겠다 못 찾겠어.

그냥 대충 말리고

다음에 와서 다시 발라 응?"



그러더니

사모는

우리 보고는 앉으라 하고

또 부엌에 서서 커피를 준비하셨다.



셋이서 주고받는

영양가 없는 말들.



커피를 들고 온 사모는



"아, 맞다! 차를 줄 걸 그랬나?"

하며

박스에 든 티 세트를 열어 보였다.



"이거 그 집이 준거야~

그때 집 보러 왔다가

우리 집에 밥 먹고 간 집 있지?

오늘 못 온 다네~

그때 밥 얻어먹은 거 고맙다고

이걸 한국서 사 왔더라고~ "



집 구하러 미국에 왔다가

사모네 인사하러 들러서는

밥 얻어먹고 갔다는

그 염차장 네.



사모네 외아들과

동갑이라는 그 큰 딸이

가슴을 흔들어 대며

섹시댄스를 추고 갔다는

그 염차장 네.



그걸 보고

말릴 생각 없이 웃고 앉았더라는

그 염차장 네 말이다.



오늘

일타쌍피로

다 보고 갈 줄 알았더니만

안 온다네.



그렇게

커피잔을 들기 시작할 때쯤

고 과장의 부인 L이 도착했고

열린 문으로

시끌벅적하게

우르르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4살짜리 큰 아이와

이제 돌이 지난 둘째를 데리고 오느라

이미 지쳐 보이는 L.



단출했다.



주재원으로 나왔지만

영주권으로 돌린 집들은

아예 부르지 않았던 거고

간신 같던 M은

떨어져 나간 지 오래이며

뉴페이스 한 명은 불참했으니 말이다.



꼬맹이들과 강아지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한바탕 하고 있는 동안에

둘러앉은 여자 셋은

아주 무난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이들은 어떤지,

이 백인 시골마을에서

뭘 해 먹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수위조절들을 알맞게 해 가며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지.



이러저러한

생활의 힘든 점을 공유하기 시작하자




"아유~~ 언니,

내가 여기 온다고 미용까지 배웠잖아~

필요하면 말해요"



미국의 미용은

손기술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가격이나 팁이 만만치 않아서

셀프로 해결하는 한인들이 많다.



우리도 그중 하나이고

그런 사정을 알고서

미리 배워 왔다고 말하는 J.



사모는 너무 잘 됐다면

본인의 머리 좀 봐주라면서

풀어헤쳤고

J는 옆에서

그 머리를 이리저리 들춰보며

아니 여태 이 꼴로 산거냐면서

핀잔을 주더라.



그러는 와중에

눈에 띄게 다르다 싶었던 건

사모의 태도였다.



그리

까랑까랑 톡톡 튀던

기센여자 사모가

그날은 희한하게도

푼수에

오두방정 컨셉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도착했을 때

J의 요구에 맞춰

이방저방

동분서주했던 모습도 그렇고

왜 이렇게 오늘 정신이 없어봬지..?



조용하던 집에

사람들이 들이닥치고

애랑 개가 뒤섞여

정신이 없게 만드니

혼이 쏙 나갔나 보다 하고 말았지.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모는

본인이 각 잡고 우아 떨고 있으면

분위기가 딱딱해질까 봐

그랬다고 하더라.

안 그래도

다들 초면이라 어색할 텐데

나라도 그렇게 푼수짓을 해서

풀어줘야 하지 않겠냐고.



그런데

그렇게 만만해 보이는 모습은

J에게 보이지 말았어야 했다.



사모가 무슨 말만 하면

말끝마다 핀잔을 주더라.

일부러 우스갯소리를 하고

망가져 보이기라도 하면

그걸 다큐로 가져다가



"언니! 그게 아니라니까!,

or

아이고~~ 그러면 안 돼요~~,

or

이 언니 정말 아무것도 모르시네!"

.

.

.




보고 있는

다른 사람 무안하게시리

이 여자는 눈치가 없는 건지,

원래가 이런 사람인건지,

작정하고 꼬박꼬박

한 마디씩을 박아 넣었다.



그리고 나에겐

마치

아랫사람을 대하는 듯한 말투랄까?



J의 남편 이 차장은

내 남편과 직급이 같다.

굳이 따지자면

내 남편이 차장을 먼저 달았으니

더 위인 거지.



그런데

이 차장이 내 남편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 때문인가?,

나보다

자기 나이가 더 많다는

이유 때문인가?



말투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니

잡아챌 수도 없고

그냥

기분 탓이려나 할 수밖에.



그렇게 첫 만남은 흘러갔고

그 이후로도 J는

사모집에 살다시피 들렀다고 한다.



와서

반찬도 얻어가고.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빌려도 가고.

맘에 드는 게 있으면

달라고 하기도 하고.



그런데 웃긴 건,

J는

사모를

한 번도 초대한 적이 없다고 했다.



말로는

밥을 먹자, 초대를 하겠다

수도 없이 말 하면서도

단 한 번을 말이다.



그 점에 대해

사모는 섭섭해하면서도

이젠 내가 필요 없는 거겠지~~

하더라.



그 정도 인연에,

그 정도 큰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그랬다는 건

진심이 없는 관계라는 거겠지.



쉽게 말해서

사모를 호구로 본 거고

사모도 알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사모나 나나 이땐 몰랐다.

첫 단추가 잘 못 끼워졌다는 걸.



그리고

그 잘 못 끼워진 첫 단추가

우리에게 가져다 줄

나비효과를 말이야.



나중에 사달이 나고서야

사모는 이날을 제일 후회했다.



"내가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걔한테 존댓말 쓰면서

아주 딱딱하게

불편하게 대했어야 했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