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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Oct 12. 2022

<31> 이 순간 내가 살아있다는
인식이 행복이다

-박경리

“세상은 아름답다. 살아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일순 일순 내가 살아있다는 인식은 행복한 것이다. 거실에 들친 초겨울 햇빛, 낙엽 하나,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아이들, 어느 것도 내게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박경리(1926~2008)=경남 통영 출생. 우리나라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김동리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저서로 ‘토지’ ‘김약국의 딸들’ 등 다수.


 

박경리의 청춘은 꽤나 불행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어머니를 내치고 새 살림을 차렸으며, 어머니는 장롱에 돈을 쌓아놓고도 여학교 등록금을 주지 않았다. 부모는 증오의 대상이었으며, 그에겐 늘 가난과 고독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남편은 한국전쟁 때 좌익으로 몰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중 사망했다. 결혼한 지 4년 만이며 이때 박경리는 불과 24세. 설상가상으로 세 살짜리 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었다.


살아갈 날들이 얼마나 암울했겠는가. 그에게 희망과 용기의 끈이 되어준 것은 독서와 글쓰기였다. 문학소녀 박경리가 본격적으로 시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삶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었다. 지적 장애 딸 때문에 실의에 빠져 있다 글쓰기로 재기한 미국 여류 작가 펄 벅을 연상케 한다.


박경리는 대하소설 ‘토지’로 위대한 작가가 되었지만 그것은 젊은 날의 불행이 가져다준 귀한 선물이었다. 삶이 마냥 행복했다면 펜을 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실제로 그는 어느 문학 행사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의 삶이 평탄했더라면 나는 문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삶이 불행하고 온전치 못했기 때문에 나는 글을 썼던 것이다.”


크게 성공했기 때문일까, 박경리는 나이 들어 곧잘 인생을 예찬했다. 서두에 소개한 글은 노년기에 쓴 일기문이다. 세상은 충분히 아름답고,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살아있다는 자체가 행복이라고도 했다.


그의 행복은 지극히 소박한 것이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은 산골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싶다고 했다. 자신을 청상과부로 만든 남편, 일본 유학파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가진 것이 많으면 고단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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