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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Oct 13. 2022

<32> 작지만 확실한 행복

-무라카미 하루키

“서랍 속에 반듯하게 개어 말아둔 깨끗한 팬티가 가득 쌓여있다는 것은 삶에 있어 작기는 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하나이다.”

 

*무라카미 하루키(1949~ )=일본의 소설가, 수필가, 번역가. 21세기 들어 인지도가 가장 높은 일본 작가. 저서로 ‘노르웨이의 숲. “작지만 확실한 행복’ 등 다수.


 

하루키는 ‘소확행(小確幸)’이란 신조어를 유행시킨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1986년에 펴낸 수필집 ‘랑겔한스 섬의 오후’가 시발점이다. 첫머리에 소개한 문장이 그것이다. 10년 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제목의 또 다른 수필집을 출간하면서 소확행은 가장 주목받는 행복 키워드가 됐다.


하루키는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새로 산 하얀 셔츠를 뒤집어쓸 때의 기분, 겨울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속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감촉 등을 소확행의 예로 들었다.


세상살이가 너무 팍팍해서일까, 소확행은 ‘워라밸’과 함께 바람직한 생활 태도로 일정 부분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현재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 각국에 휘게(덴마크), 라곰(스웨덴), 오캄(프랑스)이란 단어가 유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기어코 성공하겠다며 짧은 인생 끝없이 소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돈이나 권력, 명성을 얻는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니다.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삶에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확행의 자세는 권장할 만하다.


하지만 한창 꿈과 희망을 좇는 청년들에게도 바람직한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 청춘은 도전이다.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 사실 하루키도 소확행을 말하면서 소극적 안주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철학자 최진석의 지적은 음미해볼 만하다.


자잘한 행복이 자기 행복의 전부인 줄 알고 소확행 소확행 하는 것은 이 세계를 자기 포부와 꿈으로 살겠다는 의지는 없고, 그냥 자본주의의 부스러기나 받아먹으며 심리적 만족을 행복으로 착각하는 삶을 살겠다는, 나약한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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