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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Aug 01. 2023

<11> 기다림을 넘어야 기회가 있다

“내 시대가 올 거야. 난 기다릴 수 있어.”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오스트리아 출신 지휘자)의 좌우명



눈을 지그시 감는 것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대형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단원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쉼 없이 눈을 맞춰야 할 텐데 아예 감아버리다니…. 소리의 내밀한 흐름을 파악하는 데 그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거장은 생각했을 것이다.


20세기 클래식의 황제라 불렸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에 속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무려 35년간 종신 지휘자로 군림한 클래식 음악의 전설이다. 클래식 대중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런 카라얀에게 탄탄대로만 있었던 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힘들고, 미래마저 불투명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는 약관 21세에 독일 남서부 소도시 울름의 시립 오페라극장 전속 지휘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곳 연주 환경은 아주 열악했다.


오페라 단원이 16명밖에 없었으며, 4명이 필요한 트럼펫 연주자는 1명뿐이었다. 16명으로 50명의 소리를 내야 헸으니 고강도 연습 이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매일 13시간씩 강행군했다. 모든 잡일은 책임자인 그가 도맡아야 했다. 이처럼 카라얀은 오케스트라 정상화를 위해 5년 동안 심혈을 기울였음에도 인정받지 못한 채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이후 1년 동안이나 일자리를 찾지 못해 유럽 곳곳을 헤매고 다녔으니 얼마나 참담했을까?


이 무렵 카라얀은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내 시대가 올 거야. 난 기다릴 수 있어.” 인내와 희망의 좌우명이다. 음악적 소질이 탁월하고 연습량 또한 어느 누구보다 많았기에 세상은 그를 외면하지 않았다. 울름보다 큰 도시 아헨의 오페라극장 수습 지휘자가 되었으며, 1년 뒤에는 이 극장의 음악 총감독이 되었다.


점차 이름이 알려지면서 1937년부터는 베를린 오케스트라와 인연을 맺게 된다. 하지만 그곳엔 그보다 훨씬 명성이 높았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상임 지휘자로 있었다. 문제는 푸르트벵글러가 카라얀에게 경쟁심을 느낀 나머지 그를 철저히 배제했다. 푸르트벵글러가 있는 한 제대로 지휘봉을 잡기 힘든 구조였다.


이때도 카라얀의 좌우명이 그를 따뜻하게 부축했다. 조급하게 서두를 것이 아니라 조용히 내공을 쌓는 기다림의 지혜를 발휘한 것이다. 사람 일이란 알 수 없는 법, 1954년 푸르트벵글러는 갑자기 사망했고, 카라얀은 곧바로 그 뒤를 잇게 된다. 이후 35년 동안이나 그 자리를 지키며 불세출의 명성을 쌓았다.


우리는 요즘 기다림이 미덕일 수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인스턴트 메시지, 실시간 결재, 새벽 배송, 3분 요리…. 이런 분위기에서 기다림은 처짐이나 포기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때론 마음을 비운 채 채움을 기다릴 필요가 있다. 욕심부려 서두르다 자칫 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다림을 넘어야 기회가 있다.


슬픔이나 근심걱정의 안개를 속히 걷어내고 희망의 기다림을 택해보면 어떨까? 미국 시인 에머슨은 이런 말을 남겼다. 


“슬픔은 뒤를 돌아보고 근심은 주위를 둘러본다. 하지만 믿음은 위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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