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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Nov 16. 2023

<80> 돌보다 물이 좋다

상선약수

-반기문(전 유엔 사무총장)의 좌우명



물과 돌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물이 부드러움, 곡선, 친화력, 느림이라면 돌은 단단함, 직선, 고집, 빠름이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양쪽 이미지가 적절히 합쳐진 사람이 세상살이에 유리하다. 외유내강(外柔內剛)인 사람이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지도자 가운데 물의 이미지가 유달리 강한 사람이 있다. 외교부 장관과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반기문(1944~ ). 그는 10년 동안 유엔을 이끌면서 많은 이들로부터 나약하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끝내 온화한 리더십을 버리지 않았다.


그의 좌우명이 상선약수(上善若水)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중국 고전인 ‘노자’ 제8장 첫머리에 나오는 표현으로 ‘가장 훌륭한 덕(德)은 물과 같다’라는 뜻이다. 반기문은 유엔 사무총장 시절 상선약수 휘호를 써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생일 선물로 준 적도 있다.


상선약수로 시작되는 ‘노자’ 제8장은 이렇게 이어진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는 않고, 주로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반기문은 상선약수를 가슴 깊이 새기고 살아온 듯하다. 각종 모임에서 그는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물은 언뜻 매우 약해 보이고, 힘도 색깔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물은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 강한 힘을 갖고 있다. 물은 인내와 유연한 지혜를 갖고 있다.” 


실제로 그는 외교관 시절 인내와 경청, 절제를 미덕으로 삼았다. 온갖 어려운 협상에서 유연한 태도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능력을 발휘했다. 유엔 사무총장 시절에도 특유의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분쟁 당사국 지도자들의 마음을 손쉽게 열 수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물에는 다음 세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 항상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겸손을 의미한다. 둘째, 장애물을 만나면 곧바로 피해서 돌아간다. 다투는 법이 없으니 화평이다. 셋째, 흐르면서 온갖 오물을 안고 내려간다. 한없는 포용이다.


남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겸손하고, 싸우지 않고, 포용할 줄 안다면 인생이 얼마나 평안할까? 이런 성정을 가진 사람에게는 성공도, 행복도 비교적 쉽게 주어질 것이다. 2500년 전 대사상가가 가장 훌륭한 덕(德)이 물과 같다고 규정한 이유를 알겠다.


필자도 상선약수란 말을 좋아한다. 지금보다 젊을 때는 물과 돌을 합친 ‘수석(水石)’ 혹은 ‘물처럼 돌처럼’이란 말을 좋아했으나 나이 들수록 돌보다 물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돌처럼 단단한 사람보다 물처럼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부드러운 사람이 단단한 사람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고 더 행복할 것 같아서다. ‘물처럼’을 간혹 필명으로 사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기문은 물이 가진 특성 중에서도 겸손을 매우 중시한다. 겸손은 사적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데도 중요하지만 지도자로서 리더십을 발휘하는데 필수라는 생각을 가진 듯하다. 그가 한 말이다.


“겸손은 결코 헌신이나 통솔력의 부족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겸손은 요란한 팡파르를 울리지 않으면서도 과업을 완수하는 조용한 결단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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