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느림 속에서 '진짜'를 묻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길은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이다.” -헤르만 헤세

by 단음

[PART 3] 삶의 리듬이 달라졌다

2. 느림 속에서 '진짜'를 묻다





“음악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진짜라고 생각합니다.”

— 임윤찬, 반클라이번 콩쿠르 직후 인터뷰


출처: 유튜브 채널 'KBS시사' (인터뷰장면: 6분 18초 ~ 6분 58초)




처음엔 ‘18살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하고 신기해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이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마치 잊은 줄 알았던 무언가를 다시 꺼내려는 사람처럼, 자꾸만 내 안에서 움직였다.


진짜란 뭘까.

왜 음악이 그 ‘진짜’ 중 하나라고 느껴졌을까.

클래식도 잘 모르는데, 왜 나는 이토록 흔들리는 걸까.


아마도—

나는 너무 오래,

‘진짜 아닌 것들’ 속에서 살았는지도 모른다.

빠르게 휘발되는 말들,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세상,

누군가 대신 정해주는 콘텐츠 사이에서.








시작은 아주 단순했다.

임윤찬이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데미안』, 『싯다르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그 책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나는 마치 숨겨진 지도를 따라 걷는 기분이었다.


그 외에도 『밤의 사색』, 『삶을 견디는 기쁨』, 『릴케 시집』 등 여러 책이 나의 독서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그 무렵 나는,

현실에서 마주한 고통을

처음으로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도 대신 감당해주지 않는 고통,

도망치지 않아야 건너갈 수 있는 일들.


“고통을 사랑하라. 저항하지 말고, 도망치지 말라.”

— 헤르만 헤세, 『삶을 견뎌내기』


“모든 것을 당신에게 일어나게 하라.”

— 라이너 마리아 릴케,『라이너 마리아 릴케 명언 30


우연히 나를 울리는 문장들을 만나는 순간,

내 안의 어떤 감정이 조용히 이름을 얻었다.


‘아, 나만 이 길을 걷는 게 아니었구나.’

누군가 오래전, 같은 질문을 품고

먼저 걸어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시대와 언어를 넘어 닿는 감정이 있다는 것.

삶의 본질을 건드리는 문장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진짜’라는 것.









“음악이 꽃을 피우는 순간은

고립되고 외로운 고민 끝에 찾아온다.”

— 영화 〈크레센도〉


그 말이,

그의 연주를 조금은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왜 어린 피아니스트의 손끝에서 나온 음이

그토록 깊게, 오래 울렸는지.


임윤찬의 ‘진짜’가 뭔지는,

나는 알 수 없다.


나는 다만,

그의 연주를 따라 걷는 동안

내 안의 질문을 마주했고,

그걸 따라가보기로 했다.


선명한 목표도,

대단한 신념도 정하지 않았다.

흔들려도 괜찮고,

멈춰 서도 괜찮다고—


그것이 세상의 기준과 다를지라도.










그렇게 지금, 나는

나만의 ‘진짜’를

조용히 찾아가는 중이다.


물론, ‘이 길 맞나?’ 싶은 순간도 많다.

하지만,

생각보다 꽤 잘 걷고 있는 것 같다.

가는 길이 또 길이 되겠지.




내가 고통을 마주할 때 떠오르는 연주,
나에게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연주.

J.S.Bach / Siciliano BWV 1031
출처: 유튜브 채널 'KBS클래식 Clas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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