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은 전달할 수 있지만, 지혜는 전달할 수 없다.“ – 헤르만 헤세
나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을 한다.
아이들은 그냥, 보기만 해도 사랑스럽다.
특히 아들을 낳고 나서는
모든 아이들이 반짝이는 보석처럼 보인다.
그에게 음악이 그런 존재일까?
이유 없이 그냥 좋은 것.
생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그저 존재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수상 여부와는 상관없이
위대한 작곡가들의 음악을
더 많은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그의 마음.
그건, 대가가 없더라도
아이들이 조금 더 행복하고,
조금 더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과 비슷한 느낌일까.
물론,
그는 나보다 훨씬 더 순수하고 진실되게 음악을 대한다.
나는 그 마음이 존경스러워서
이렇게까지 빠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엔 그런 연주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클래식을 처음 알게 된 순간 마주한 사람이 임윤찬이라서—
클린이인 나는 그냥,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대단하게 느껴졌다.
마치 갓 태어난 오리가 처음 본 대상을 엄마로 인식하듯.
그렇게 어미 오리를 보듯,
나도 그를 따라 어느 순간,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예전보다 더 순수하게,
더 진심을 다해 임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무언가를 준비할 때
시작점은 언제나 같았다.
'우리 아들이 이런 경험을 하고,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고,
이렇게 성장했으면 좋겠다.'
빠르고 복잡해지는 세상 속에서
내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변하지 않는 가치’였다.
속도보다 방향, 경쟁보다 존중,
정답보다 질문, 성과보다 존재,
그리고—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런데 클래식을 알고,
마음에 남는 문장을 만나고,
그의 무대 위 태도, 그리고 ‘진짜’를 대하는 마음을
마주하다 보니—
내가 바라보는 방향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서
정말 필요한 건 무엇일까?’
내가 믿는 ‘진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기만의 ‘진짜’를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게 더 본질적인 것 아닐까—
누군가의 말에 맞추기보다,
자기 내면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
질문을 품고, 흔들려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
음악 앞에서
어떤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자기 마음에 끝까지 충실한 임윤찬처럼.
그래서 나는,
수업 자료를 하나씩 새로 만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뭘까’를
고민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정답을 말하기보다
질문을 던지게 만들고,
어른의 기준보다
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처럼’이 아니라
‘자기답게’ 살아가도록—
내 수업이 그 여정을 응원하는 공간이었으면 했다.
그렇게 아이들이 서로의 몰입을 바라보며,
함께, 더 크게 성장하는 모습을 마주할 때면
나는 다시 다짐하게 된다.
내일은 조금 더,
아이들이 자기만의 리듬으로 걸어갈 수 있게
조용히, 뒤에서 지켜줘야지.
음악처럼—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자기만의 리듬으로 단단히 설 수 있기를.
음... 그리고 가끔은,
‘손민수 선생님이 어떻게 종교가 되셨는지’도 고민하지만,
아직 나에겐… 너무 높은 경지인 것 같다.
그저 아름다운 음악을 함께 만들어주셔서 감사할 뿐이다.
모리스 라벨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라 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