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늦춘 걸음, 그 끝에 마음을 울리는 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클래식을 눈보다 귀로 듣기 시작하면서
내 삶의 리듬은 조금씩 느려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의 음악을 쫓는 속도도 함께 느려졌다.
예전엔 모든 공연에 가고 싶었고,
좋은 자리를 놓치면 하루 종일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지금은
새고 지옥도 지나왔고,
취소표에 대한 집착도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다.
그러자—
오히려 더 큰 행운이 찾아왔다.
파보 예르비 & 도이치 캄머필하모닉, 쇼팽 협주곡 2번.
총 네 번의 공연 중 세 번은 실패했고,
예술의전당 단 한 장만 간신히 얻을 수 있었다.
이미 가진 한 장의 표에에 감사하며,
가끔 취소표만 확인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2024년 12월 17일, 인천아트센터.
B열 18번, 중블.
(17열과 18열 사이 복도가 있어 키가 작은 내게는 최적의 자리였다.)
공연 하루 전날인 16일.
기적 같은 취소표를 발견했다.
티켓팅 당일엔 절대 얻지 못했을 자리였다.
“설마 이게 진짜인가…?”
예매 버튼에 닿은 손가락엔 식은땀이 맺혔다.
그렇게 앉은 공연장.
그리고, 그 문제의 2악장.
"요즘 임윤찬은 pppppppp 연습하나?"
누군가의 농담 같은 글이 떠올랐다.
믿기지 않을 만큼 여린 소리가
홀 안을 맴돌다
빛나는 작은 구슬이 되어
내 귀로 들어왔다.
그 음과 음 사이,
의도된 침묵마다
숨이 가늘어졌다.
누군가 내 가슴을
천천히 움켜쥐는 느낌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
예상하지 못한 자리에 앉아 들은 그 연주는
그래서 더 깊고 선명하게 마음에 남았다.
2025년 3월 25일.
고양 아람누리, 골드베르크 변주곡.
표가 없었지만
‘로비에서라도 듣자.’는 마음으로 향했다.
‘거장필통’을 들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래, 이왕이면 즐겁게 덕질하자!”는 마음으로 꺼내 들었다.
그리고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중블 9열.
현장에서, 상상도 못 한 자리를 양도받았다.
첫 공연 ‘1층 7열 중블(1-4에서 언급된 최고 기록)’ 이후,
이만한 자리는 다시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현장 양도해주신 분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미 3월 30일 통영 공연 티켓이 있었기에
마음은 한결 여유로웠다.
그 여유 덕분이었을까.
그날 느낀 감정은 오히려 더 깊은 감사로 돌아왔다.
처음 들은 골드베르크는,
앞서(글 2-3) 말했듯 충격 그 자체였다.
미리 들었던 다른 곡들과 너무 달라서
곡 번호를 세어가며, 예습한 부분과 비교하며 들었다.
마치 교수님이 어려운 개념을 쉴 새 없이 설명하시고,
나는 정신없이 받아 적는 학생이 된 느낌.
머릿속이 점점 멍해졌다.
이 시간이 없었다면,
며칠 뒤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기존 곡들과 비교하며 공부하듯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양도 받은 티켓 덕분에
3월 30일 통영 같은 레파토리 공연에서는
곡 자체를, 감정의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형용할 수 없는 감동.
휘몰아치는 감동.
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그날 분명히 깨달았다.
어쩌면 진짜 행운이란,
원하는 걸 손에 넣는 순간이 아니라—
기대를 내려놓고도
삶이 내게 다시 다가와줄 때라는 것.
그러니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해 애태우는 마음도,
모든 티켓팅을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도—
조금은 내려놓기로 했다.
물론, 다음 티켓팅이 다가오면
심장은 또다시 쿵쾅거리겠지만—
이제는 안다.
음악은 늘 예고 없이 온다는 것을.
또다른 행운이 될,
골드베르크 음반을 손꼽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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