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공부에도 여유가 필요했다

전공자의 감동은 못 느껴도, 나만의 감정은 깊어지겠지

by 단음

[PART4] 덕질에도 리듬이 필요했다

2. 공부에도 여유가 필요했다





클래식을 좋아하게 된 뒤,

처음엔 ‘클래식 전체를 더 잘 알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전반적인 클래식 역사의 흐름을 살피고,

그가 연주했던 곡의 작곡가 생애를 들여다보고,

관련 도서를 펼치고, 악보를 뒤적이며

다양한 연주 영상도 부지런히 찾아들었다.


공연을 더 깊이 느끼고 싶었다.

그 감동과 충격을

전공자들처럼 온전히 마주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곧 실감하게 됐다.

500년에 가까운 클래식 역사,

수많은 악기, 끝없는 레퍼토리—

그 모든 걸 따라가기엔

현실은 늘 음악보다 한 발 앞서 있었다.


체력과 집중력은

늘 아이들과 집안일에 먼저 쓰였고,

‘클래식 공부’는

어느새 마음 한켠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어마어마한 레퍼토리를 거침없이 넓혀가는 천재, 임윤찬조차

“이번 생에서 어떤 곡을 연주할지 고민한다”라고 했는데—

그때 나는,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었던 걸까.

(‘이번생’이라는 단어를 쓰다니..

그는 분명 n회차 인생을 살고 있음이 틀림없다)


아무리 예습을 해도

전공자들이 느끼는 그 깊은 감정과 충격을

내가 고스란히 느끼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클래식 공부’도

조금 더 느리게, 흐르는 대로 즐기기로 했다.


그는 이미 놀라운 속도로

새로운 레퍼토리를 선보이고 있고,

나는 그 흐름만 따라가며,

가지치기하듯 조금씩

나만의 클래식 지도를 그려보기로 했다.


게다가

한 번씩 “들어보세요” 하고 슬쩍 건네는 숙제를

듣고, 찾아보고,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다.


최근
"역대급 근본 연주 드디어 찾았습니다" 라는 글로 인해
자발적으로 건네어 받은 숙제
Bach - Goldberg Variations, BWV 988 - Christiane Jaccottet (Harpsichord)
출처: 유튜브 채널 'pianushko'


임윤찬이 건네준

하프시코드 근본 골드베르크 연주를

한번 들으면 43분 42초,

곡 하나씩 반복해서 들으면 두 배,

하프시코드에 대해 알아보고,

왜 이 연주가 ‘근본’인지 살펴보고,

다른 하프시코드 골드베르크들과 비교해 보고,

하프시코드와 피아노의 차이도 따져보고,

피아노로 연주하면서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는지도 생각해 보고,

전문가들의 평론을 찾아 읽고 나면—

벌써 이것만으로도 며칠이 훌쩍 지나간다.

(‘숙제’라고 쓰고 ‘취향저격 자율학습’이라 읽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왜 난 매번 이러고 있을까. )








지금도 공연할 곡의 악보를 미리 보기도 하고,

다른 연주 영상을 반복해 보기도 하지만—

결국 부족한 부분은,

무대 위에서 흐르는 음악을

온몸으로 마주하며 채워가고 있다


모든 곡을 이해하지 못해도,

그 순간 마음이 움직였다면—

그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사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이렇게

가슴 설레는 2년을 살아가고 있으니.


그리고 어쩌면

클린이라서—

전공자도 미처 느끼지 못했을 감정을

더 새롭게, 더 진하게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위안 하나로,

나는 또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티켓팅에 도전할 수 있다.




초보자도 쉽게 악보를 따라갈 수 있도록
친절하게 제작해 주신 모든 영상 제작자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출처: 유튜브 채널 'YunchanLimSco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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