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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영혼 갖기

법정스님의 별사랑을 흉내내 봅니다

by 구자훈


선들거리는 바람결에

가을이 묻어 오고 있습니다

밤에는 별자리가

또렷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무 두 두렁 배추 한 두렁 아욱 한 두렁

상치 한 두렁 뿌린 씨앗에는

싹이 터 오릅니다

중략

주말농장의 꼬마 해바라기

법정스님의 편지글이 오늘 아침에 쓰여진 듯 합니다.

불현듯 주말농장이 걱정됩니다. 장마와 태풍으로 이어진 비로 인해 한동안 가보지 못했고, 2주쯤 전에 비가 잠시 그친 틈을 타서 밑거름을 넣어두었거든요. 그래서 오늘 주말농장을 다녀왔지요. 땅이 보슬보슬하지는 않지만, 씨를 심기는 어려움이 없을듯했거든요. 내 몫의 텃밭 앞에는 꺼멓게 마른 해바라기의 잔해가 있군요. 지난봄과 여름에 노란 꽃을 다발로 피웠던 키 작은 해바라기인데, 오늘 보니 신비롭기까지 하던 그 모습과 너무나 딴판입니다. ‘인생은 대부분 비극이고 짧은 동안의 희극이다.’ 이것이 맞는 말인가? 아름답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서 너무 짧아 보이는군요. 주먹만 한 꽃이 피었던 메리골드도 꽃보다 씨앗 덩이가 더 많습니다. 비를 맞고 옆으로 누운 것과 채소를 심을 자리에 있는 녀석들을 정리합니다. 아직 꽃다운 모습을 한 꽃송이들은 따로 챙겨둡니다. 집으로 데려가 식탁에 올려놓으려고요. 밭에 난 야생초를 정리하고 서초구청에서 나눠준 유기질 거름을 뿌립니다. 적당히 골을 파고 적상추 한판을 심습니다. 바람이 차질 때 이것으로 쌈 싸 먹을 생각에 즐겁습니다. 종묘상에서 맛있는 무라고 준 무씨앗 한 봉지를 뿌립니다. 3~4개씩 3~40cm 간격으로 점묘를 하고, 남은 씨앗은 골 사이에 흩뿌립니다. 적당한 크기로 싹이 자라면 솎아내어 무 새싹 비빔밥을 해 먹을 욕심이지요. 배추를 심을 터를 좀 남겨 놓고 주말농장을 떠납니다.

여름 서쪽하늘 별자리

‘여름철 별자리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은하를 사이하고 커다란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백조자리와 거문고자리, 그리고 독수리자리이다. 거문고자리에서 가장 밝은 1등성은 직녀별이고 은하를 건너 맞은쪽 독수리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이 견우별이다.’

법정스님의 별 사랑이 소년 같습니다.

스님이 출가하기 전에 고향마을을 들른 어느 여자 관상가가 동네 어른들 사이에 있던 스님을 한번 쓱 보고는 ‘학생은 밤하늘에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고고하게 살상이오’하는 말을 듣고, 이후 출가하여 밤에 소변을 보러 나가시는 길에는 으레 고개를 들어 북두의 성좌에 눈길을 보내는 것이 버릇되었다고 하시네요.

“육신에는 나이가 붙지만, 영혼에는 나이가 붙지 않는다.” 잠옷 바람으로 뜰에 나가 ‘후박나무’ 아래 놓인 손수 만든 참나무 의자에 앉아 밤이 이슥하도록 달마중을 좋아하신 법정스님의 말씀입니다.

무, 배추가 자라는 텃밭을 가꾸고, 밤하늘의 별을 보고 살면 그리될 수 있을까요?

텃밭에 꽃과 무, 상추는 이미 키우고 있고, 이제 별을 볼 일만 남았습니다.


올해 광복절 전후해서 페르세우스 유성우가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데 인적이 드문 원시의 어둠이 있는 산속에서 별을 올려다보며 밤을 지새워야겠습니다.


이러면 영혼의 나이를 되돌릴 수 있습니까? 물어보려고요.

2023.8.13.




PS 스님이 심고 키우고 평생 좋아하셨던 ‘후박나무’는 일본목련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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