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하 님의 '적멸보궁 가는 길'을 읽고
운주사 일주문 앞에는
오래된 벚나무가 산다
나는 그 아래에 돌처럼 앉아
겨울 눈 녹을 무렵부터
그 꽃잎 사라질 때까지 본다.
달밤에 서리 오르는 소리
노란 아침 햇살에 서리 녹는 소리
슬쩍 벚나무 몸통에 귀대면
쪼로로옥, 수액 오르는 소리
진갈색의 꽃망울에 균열이 번진다
속치마처럼 언뜻 비치는 분홍빛
부드러운 바람이 보리밭을 스치자
아이들 소리 따라 우우 일어나는 흰 꽃
추륵추륵 비가 와서 논물 들어갈 즈음
나풀나풀나풀
아지랑이 언덕에 꽃잎 날리는 소리,
수섬 수섬 수섬
구름 떠다니는 논물에 꽃잎 내리는 소리
앉았다 일어난 자리에는 쑥이 자라고
그 자리에 머물던 사람,
말랑한 땅속으로 흔적 없이 스며든다면
인생,
살아 볼만하지 않은가?
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