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야누스의 두 얼굴
-봄, 꽃이 피는 계절에 눈이 내렸다.
나는 울고, 또 웃었다.
야누스는 나에게 두 얼굴을 주었다.
떠난자의 얼굴과 남겨진 자의 그림자.
그날의 눈은, 내 안의 두 계절을 동시에 무너뜨렸다.-
소리 없이 바람이 사그라지고
싸릿눈이 어둑한 밤공기 사이로 흩뿌려지자 낮 동안 찌부러져 있던 땅속 풀 나부랭이들이 뿌지직 소리를 내며 부풀어 오른다.
봄을 재촉하는 소리를 들었던지 겨울이 심술을 부리며 눈장군을 소환한다.
3월의 마지막을 장식하듯 내리치는 함박눈 사이로, 높은 나무 위 홀로 남은 까치집이 소복이 추위를 견뎌내는 모습에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눈물이 눈꽃 사이로 흘러내린다.
일상은 늘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모습이다.
사라져 간 것들 사이로 비줍고 들어와 슬그머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언제나 그곳에 있었던 듯 잊힌 친숙함으로 목례한다.
사람의 일상 또한 다르지 않아 보인다.
늘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매번 없는 듯하고 새로 온 어떤이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던 듯 목소리가 휘황차다.
비가 눈이 되고 눈이 녹아 물로 또 흙으로 스며들어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 무로 잊힌다.
한숨 참고 돌아본 나의 삶 또한 가슴속 뜨거운 불두덩이를 뱉어내고 나면 흙속의 재로 돌아가 있으리라.
회한이 후회와 원망과 아쉬움의 연기임을 좀 더 일찍 알았다면 매 순간이 더 아름다웠을까?
한 겨울 추위에 움츠렸다, 따스한 햇살로 깨어나는 꽃들처럼 , 먼 파도에 휩쓸렸다 출렁이는 물결 따라 돌아온 조약돌처럼, 나의 일상도 잔잔하고 따스한 봄하늘 같기를 욕심내어 본다.
그렇다, 욕심이다.
나의 그리움이 만들어낸 헛된 꿈.
그날의 바람 소리는 휘파람 같았고, 세차게 흐르던 강물의 향기는 메이플 나무의 속삭임을 싣고 나의 숨결 따라 흔들렸다. 손에 쥔 빵 한 조각은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제목 모를 책 한 권과 짧은 브런치의 사치는 '본연의 온전한 나'로 충만했다.
그 순간은 나의 것, 나의 세상이었다.
나의 젊음, 나의 사랑을 그곳에 남겨두고 나는 이곳, 나의 땅에 눈물을 안고 온 이방인이 되었다.
몇 날의 밤이 지나고 해가 떠올라도 나는 이방인이다. 나의 자리는 그림자처럼 어색하게 덜렁거리고 나의 목소리는 울림을 잃었다.
다르다는 것은 거리를 만들고 차별의 벽으로 하나둘씩 성을 쌓는다. 한번 밀려 나온 벽 밖에서는 온 힘을 다해 두드려도 문을 찾을 수 없다. 되풀이되고 또 되풀이된다. 오늘은 그 대상이 나 일뿐이다. 어느 날 엔가는 벽안에 있던 다른 누군가가 밖으로 밀려 나와 있겠지.
그렇게 모두가 이방인인 , 그 자리에 나는 아슬하게 버티고 있다. 끊어질 줄 알면서도 줄을 놓지 못하는 아둔함을 숨기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두 손 가득, 하늘 가득 눈이 와서 다행이다. 눈물이 눈꽃이 되어 참 다행이다.
기억의 기록은 시간을 따라 빛을 바꾼다.
지나온 날들의 감정은 계절처럼 되풀이 되어 피고,또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