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That's life (이집트)
https://youtu.be/TnlPtaPxXfc?si=-ZaWUGoQnyI14Xhf
아스완행 기차는 떠났다.
우리는 멀어지는 기차를, 그저 플랫폼에서 얼어붙어 지켜볼 뿐이었다.
이역만리 외국에서, 생의 가장 큰 좌절감이 아니었을까.
지나가던 청소부를 붙잡고 티켓을 보여주며 도움을 요청했다.
물론 박시시*를 바라고 한 행동이었겠지만, 그는 무척 호의적이었다.
역무원을 붙잡고 물어보다가, 티켓오피스에 우리를 데려가 물어보다가,
결국에 우리를 역 안에 있는 경찰서로 데려갔다.
경찰은 청소부의 이야기를 듣더니, 우리에게 경찰서 안에 앉아 기다리라고 했다.
그들 또한 박시시를 바라며 한 행동이었겠지만, 꽤나 친절했다.
나의 정신은 완전히 붕괴되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좌절감의 심연을 머리를 감싸고서 헤매고 있었다.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서 끙끙 앓던 중 코 끝을 스치는 담배 냄새에 드는 생각.
여기는 이집트고 나는 외국인 관광객이다.
경찰이 어지간하면 나를 함부로 건들 수 없을 것이다.
정신을 좀 차리고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대사관의 여직원분은 무척 친절했다.
그녀는 이집트의 기차가 정시에!! 떠났다는 점에 놀라고,
그 기차를 놓친 한국인 관광객이 경찰서에 있다는 점에 다시 놀랐다.
우선 대사관에서 우리 상황을 인지했으니, 형편에 변화가 생기면 다시 연락을 드리기로 했다.
경찰들이 커피를 내왔다.
잔뜩 긴장한 우리를 보며,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조금 릴랙스 하라는 말을 덧붙이며.
잔받침을 재떨이로 쓰라더라.
콧수염을 기른 경찰은 어디론가 계속 전화를 걸었다.
담배를 조금 피우니 마음이 진정되었다.
경찰들은 한국 담배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 우리에게는 에쎄 체인지가 한 보루 있었는데,
경찰들은 본인들이 피워본 담배 중 가장 달고 약하다는 평을 남겼다.
그렇게 담배를 피우고 있으니,
전화를 돌리던 경찰이 다음 기차를 탈 수 있을 거라는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자리가 없으니 우선 식당칸에 타고 빈자리를 알아서 찾으라더라.
어찌 되었든 기차에만 탄다면 다행이었다.
기차를 타려고 자리를 일어나는데, 전화를 돌리던 경찰이 본인에게 줄 것이 없냐고 물었다.
당연히 박시시로 사례를 바란다는 말 같았으나,
우리는 정말로 돈이 없었기에 가지고 있던 에쎄 체인지 담배를 한 갑 건넸다.
그는 무척이나 실망한 눈치였다.
경찰서로 우리를 데리러 온 직원을 따라가, 열차에 올라탔다.
그는 우리를 식당칸으로 안내했다.
식당칸에 짐을 풀고 앉아, 기차를 둘러보았다.
침대 칸에 가보지는 못하였으나, 식당칸도 꽤나 안락! 했다.
식당칸의 직원들은 우리의 상황에 대해서 연락을 받았는지 꽤나 잘 알고 있었다.
분명히 빈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들었는데,
그들은 인당 200파운드를 주면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며 우리를 유혹했다.
당시 환율로 한화 약 8,000원 정도의 금액이었는데,
그런데 우리는 정말로 그만한 현금이 없었다.
어찌 협상해서 카드로 결제한다고 해도,
이제 이동만 하여도 괜찮다는 안도감에 식당칸에서 버티기로 했다.
기차는 출발했다.
직원들은 각 테이블에 주문을 받고 재떨이를 가져다주었다.
커피를 한 잔 주문하고 재떨이를 받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에 맞추어 프랭크 시나트라의 <That’s life>가 흘러나왔다.
생의 가장 큰 좌절감 직후에 느껴지는 엄청난 아이러니.
*박시시란?
이집트에는 감사의 의미로 돈을 주는 문화가 있다.
주로 부자가 빈자에게 도움을 받았을 때 돈으로 값는다.
일종의 팁 같은 것. [출처: 침투부 애굽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