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장 그리고 이야기 하나
위의 그림들은 부산 여행의 장면들입니다. 서울을 벗어난 게 얼마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행의 즐거움도 잠시 생각할 것들이 많아지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겁이 많습니다. 팬데믹 상황이 끝나지 않고 있는 현재. 집 밖에 잘 나가지 않습니다. (펜데믹 전에도 그랬으니 집콕 체질이라고 해야 할 것 같네요) 백신도 2차까지 다 접종했고, 단계적 일상 회복도 접어들었고, 특별한 기념일을 앞두고 있어서 정말 오랜만에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공항에서부터 좀 당황스럽더군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두기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대기 줄을 서기만 하면 뒷사람은 내 등에 붙어있었습니다. 제가 앞사람과 거리를 두는 게 아무 소용이 없더군요. 더 놀라운 것은 줄을 서는 모든 상황에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공항을 나와 카페에서 줄을 서도 마찬가지이고 호텔에서도, 그 밖의 어느 곳에서도 거리두기는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은 2021년 11월 22일입니다. 확진자의 수는 3천 명대를 오르내리고, 위중증 환자의 수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시기입니다. 물론 예상했던 단계적 일상 회복의 부작용들입니다. 하지만 밖에 나가보면 단계적이 아니라 전면 일상 회복 같은 모습입니다. 마스크도 안 쓴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보일 정도이니까요.
공식적으로 단계적 일상 회복이란 용어를 쓰고 있지만 위드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봐야 할 겁니다. 앞으로의 시대는 절대로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공식적인 용어인 “단계적 일상 회복”이란 말에서 “일상 회복”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알맞은 단어입니다. 일상 회복이 팬데믹 이전으로 복귀를 의미한다면 완전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후의 시대는 “뉴 노멀의 생활화” 과정을 의미합니다.
펜데믹으로 급격하게 바뀐 비 정상적인 변화들이 정상으로 자리 잡는 것이 “뉴 노멀”이라는 말로 불리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의아해합니다. 팬데믹이 끝난다면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 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가? 판데믹은 어떻게 보면 핑계에 불과합니다. 판데믹은 변화의 이유를 말해주었을 뿐 그 이후 변화의 과정에 주요 변수로 작용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변화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그냥 주어지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대한민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요즘 좋은 것으로 다시 평가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많은 습관이죠. 예전부터 이제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빨리빨리 문화의 문제점으로 드러나는 것이 상대방의 개인 공간을 침범하는 상황입니다. 즉 대기 줄을 설 때 급한 마음이 들어서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과 딱 붙는 것이죠. 그동안 펜데믹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줄을 설 때 그렇게 쾌적할 수가 없었습니다. 펜데믹이 끝났다고 나의 개인 공간을 침범하도록 허락해야 할까요?
세상의 표준은 이미 뉴 노멀이라 불리는 것들로 옮겨갔습니다. 대한민국같이 관계중심의 사회도 개인 중심으로 무게추가 완전히 옮겨갔고, 디지털 전환은 거의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세상의 돈 되는 모든 것은 디지털에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펜데믹이 아직 끝나지도 않은 이 짧은 시간에 뉴 노멀로의 전환은 거의 끝난 셈입니다. 예전이 옳았으니 예전으로 돌아가자고 해도 그렇게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세상의 변화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속도의 가치가 앞장서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속도의 가치는 오프라인, 아날로그 세상에서나 힘을 발휘합니다. 디지털의 세상에서는 클릭 한 번에 끝나는 데 속도의 가치가 유효할까요? 한 발 더 빨리, 누구보다 먼저 목표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거리두기를 파괴할 필요가 없는 이유입니다. 대기 줄을 설 때 제발 저의 등에 붙지 말아 주세요. 펜데믹이 다 끝나도 개인의 최소한의 공간을 지켜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