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장 그리고 이야기 하나
(영화 “러브 어페어”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많이 리메이크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기억나는 영화로 “스타 탄생”이 있군요. 2018년에 “레이디 가가”의 출연으로 화재가 된 작품까지 원작 포함 총 4편의 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위의 그림 속 영화 “러브 어페어”가 있습니다. 러브 어페어도 할리우드에서 원작 포함 4번의 영화 제작이 있었습니다.
“러브 어페어”란 영화가 어떤 매력이 있길래 그토록 시대를 뛰어넘어 사랑을 받을까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이 영화를 찾아보는 모습이 미국 가정에서 일어나는 흔한 일 같더군요. 얼마 전 1957년작과 1994년작 러브 어페어를 며칠 사이로 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고전 할리우드 멜로 영화쯤으로 치부했었는데, 이번에 왜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마지막 장면이 반전 아닌 반전으로 유명합니다. 사랑하게 된 연인이 몇 개월 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 만나기로 하지만 여자의 사고로 못 만나게 되죠. 그 후 다시 재회하는 해피 엔딩입니다. 지금 보면 조금 밋밋한 결말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이런 멜로 영화의 문법을 만들어낸 공로는 인정해야 하겠죠. 그러나 이 스토리 구조만으로 세대가 거듭되어도 회자가 되는 이유로 보기에는 좀 약한 것 같습니다.
1994년작 리메이크 판의 대사 속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바라는 것을 얻지 않고 얻은 것을 바라고 있었다고 믿게 되죠.” “다른 곳이 그립지 않을 때 행복하죠.”
주인공 남자와 여자는 지금 현재 각각 아주 안정적이고 행복하게 보입니다. 각자 부유한 애인이 있고 그들과 곧 결혼을 예상할 수 있을 만큼 참 좋은 상태입니다. 문제는 어느 날 갑자기 그 둘의 운명적 만남이 발생한다는 것이죠. 애써 서로를 외면해 보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남자 주인공이 말합니다. “우리는 바라는 것을 얻지 않고 얻은 것을 바라고 있었다고 믿게 되죠.” 어디서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영화는 사랑이란 포장지 속에 “자신이 바라는 삶을 살아가라.”라는 메시지를 넣어 관객에게 선물합니다. 주인공들이 버린 안락하고 부유한 삶의 대가는 고작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들이 버린 것 때문에 삼일에 한번 밥을 먹어야 했다면 그들의 선택을 저는 결코 찬성하지 않았겠지만 충분히 감수할 만한 도전이었죠. 다만 그동안 그럴만한 계기가 없었던 것뿐입니다.
아마 우리의 삶도 비슷할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삶으로 나가는 대가가 그렇게 감수하지 못할 정도의 손해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느 심리학자가 말했습니다. 싫은 것을 안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요. 영화에서 이런 대사도 나옵니다. 주인공에게 물어봅니다. “당신은 언제 행복한가요?” 주인공은 대답합니다. “다른 곳이 그립지 않을 때 행복하죠.” 싫은 것만 안 하고 살다 보면 다른 뭔가가 그리워질 겁니다. 그것을 해봤다면?.. 후회가 밀려오겠죠.
살면서 그냥 운으로 주어지는 것들만 가지고 살아가고, 그것들이 내가 원했던 것이라고 믿게 된다고 해서 우리는 행복할까요? 영화는 “결국 언젠가는 네가 원하는 것을 찾아가게 되어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 러브 어페어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화면도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특히 57년작 리메이크는 그림 같은 영상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진짜 그림일지도 모릅니다. 그때만 해도 CG가 발달하기 전이라서 필름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했다고 하더군요. 두 주인공이 섬을 찾아가는 장면은 정말 회화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반면 94년작 리메이크는 아름다운 OST로 유명하죠. “엔니오 모리코네”가 음악을 맡았고 그는 아름다운 선율들로 영화를 빛나게 합니다. 영화 속에서 아이들의 음성으로 들려주었던 비틀스의 "I will"은 변함없는 인기 OST입니다. 그리고 여주인공 "아네트 베닝"의 리즈시절을 목격할 수도 있죠.
전통적인 영화 문법을 사용하는 작품들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저 역시 OTT용 영화들의 영상문법에 더 익숙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OTT의 등장은 역설적으로 지난 시절의 영화들을 더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고전 영화 속의 낯섦이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