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실에서 만난 사람들
프롤로그
얼마 전 갑자기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충수염(맹장)으로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집 밖에 나갔다가 거의 일주일 만에 돌아왔네요.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라서 호들갑을 떨만한 것도 못되지만 그래도 전신마취를 한다는 수술은 제법 비장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것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몸으로 체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정말 우리 인간은 내일, 아니 몇 시간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임을 처절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미래라는 이름의 우연이 너무 나쁘지만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품격은 어디에서나 필요하다. 병상에서도..
극한의 고통으로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거친 언행이 남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습니다. 특히 병상에서는 어느 정도 감수되는 상황이겠지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느 상황, 어느 자리에서도 불평만 하는 사람은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옆자리 할아버지에게서 들려오는 끊임없는 불평, 불만의 목소리는 그분의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환영받기 힘들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비단 환자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의료진들의 품격 역시 천차만별입니다. 담당의사의 부재로 다른 의사가 저의 수술부위 소독을 진행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의사가 원래 그런 사람인지, 담당 환자가 아니라서 그런 건지 몰라도 처음부터 좀 까칠하더군요. 그런데 저의 음부가 훤히 드러나게 된 상황인데 커튼도 안치고 소독을 했더군요. 그리고 커튼을 열어둔 채 휑하니 갔습니다. 너무 당황한 나는 아픈 몸을 일으켜 세워서 겨우 커튼을 닫고 주섬주섬 옷을 여미었죠. 품격이란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극한 상황 속에서도 작은 행동 하나로 품격의 빛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또한 아주 쉽게 품격을 내보일 수 있는 자리에서도 작은 행동 하나가 그를 무례한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병원에서 까지 품격이 왜 중요하냐고요? 우리는 동물 병원이 아닌 인간 병원에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실력이 좋아야 한다.
그렇게 무례한 의사를 겪은 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친절한 의사와 불친절한 의사. 어떤 의사가 좋은 걸까? 결론은 완전히 다른 방향에 있더군요. 좋은 의사는 결국 좋은 실력을 가진 의사였습니다. 내가 겪은 그 무례한 의사가 세계 제일의 명의였다면? 무례함 따위는 고려의 대상이 아닐 겁니다. 무례하지만 수많은 생명을 살렸을 테니까요. 입원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들 중 하나는 혈관 주사였습니다. 혈관 주사를 잘 놓는 간호사와 그렇지 못한 간호사가 존재합니다. 입원기간 말미에 혈관통이 심해져서 다른 곳으로 혈관주사를 옮겨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간호사는 너무도 자신감 있고 부드럽게 주사를 놓았습니다. 전혀 아프지가 않았죠. 그 시간이 새벽이라서 조명도 최소한으로 켜놓고 했는데도 말이죠. 그 수많은 친절한 간호사들은 기억도 나지 않고 실력 좋은 그 간호사만 기억납니다. 그 기억은 친절함이 아닌 실력임에 분명합니다. 예전에 재테크를 말하는 어느 유튜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실력이 초보라면 왕초보에게 가르치는 콘텐츠를 만들면 되고, 내가 왕초보라면 왕 왕초보를 가르쳐라. 하지만 이제 알겠더군요. 그렇게 하면 잠깐 돈을 벌 수 있을지 몰라도 사용자들은 결국 그런 콘텐츠를 다시 찾지 않을 것이라는 걸요. 사람들이 실력이 없지 안목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의료 지식이 없는 나도 실력 있는 의사와 간호사를 알아볼 수 있는 것처럼요. 아무리 무지한 사람이라도 상대가 실력이 있는지 알아봅니다. 결국 실력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고통은 수술에서 오지 않고 입원 생활에서 온다.
수술은 참 아픈 상황입니다. 그러나 견디기 힘든 것은 그 이후의 입원 생활이었습니다. 전신 마취의 수술 상황은 그저 잠이 든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고통은 그 이후입니다. 마취가 풀리고 엄습하는 고통은 수술의 여운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 여운까지 수술의 고통으로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빨리 그 여운은 지나갑니다. 무통주사라는 것을 추가했는데 그것 때문인지 한동안 별다른 고통 없이 지냈습니다. 문제는 계속되는 혈액 주사로 인한 혈관통과 자세를 바꿀 때마다 찾아오는 고통, 그 고통을 이끌고 화장실을 가야 하는 웃기면서도 슬픈 상황. 그리고 감옥 아닌 감옥인 침상에 고립된 생활.. 고통은 고통을 야기한 그것보다 엉뚱한 곳에서 옵니다.
대한민국 사람은 환자가 되어도 밥을 빨리 먹는다.
입원하면서 한동안 금식을 했었습니다. 그러다 처음 병원 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죽이었죠. 죽이지만 천천히 조심스럽게 먹어야만 했습니다. 주위의 환자들은 소화기 쪽 문제가 아니었는지 식사를 잘하더군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몸이 아픈 환자가 되어도 밥 먹는 속도는 순식간이라는 겁니다. 밥을 빨리 먹는 게 건강에 나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건강이 안 좋아져서 입원을 했는데 밥 먹는 속도는 여전하다니.. 그러나 더 놀라운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환자들이 식사한 빈 그릇을 수거하기 위해 수거용 전동수레가 대기를 하는데 30분에서 1시간 사이에 철수를 합니다. 병원 측에서도 최대 1시간을 식사시간으로 간주하는 겁니다. 저는 한동안 1시간 넘게 먹어서 별도로 빈 그릇을 치워야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빨리빨리 정신은 아픈 와중에서도 작동합니다.
보호자의 역할은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환자를 위한 보호자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요즘은 1인, 2인 가구가 대부분이라서 상주하는 보호자들이 생각보다 별로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저 역시 혼자 병상에 있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령인 환자분들은 간병인들을 고용한 것 같더군요.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이 보였습니다. 노령 환자가 우물우물 말을 하는데 도저히 알아듣기 힘들더군요. 고용된 간병인 역시 알아듣기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딸이 왔습니다. 그 어눌한 말을 단번에 알아듣고 조치를 하더군요. 대화는 고통을 줄여줍니다. 확실합니다. 제가 경험했거든요. 누군가의 간병인 역할을 하게 된다면 그냥 이야기를 잘 들어주세요. 좋아하는 친한 사람이 입원해있다면 잠깐 들러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당신이 가장 필요합니다.
잘 먹고 잘 배뇨(배변)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입원생활은 가장 원초적인 생리현상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회복한다는 가장 중요한 지표 중에 하나가 아마도 얼마나 잘 먹게 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잘 배뇨, 배변하는지? 일 것 같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잘 먹고 잘 싸면 모든 게 안심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잘 먹고 잘 싸는 것 그 이외에 더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장 지방은 외과 수술의 적이다.
저는 비교적 간단한 충수염(맹장) 수술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아주 고약한 케이스로 쉽지 않은 수술이었다고 수술하신 의사분이 강조하며 말씀하시더군요. 그 이유는 단연 내장 지방이었습니다. 내장 지방은 외과 수술에 가장 큰 문젯거리입니다. 저의 아버지도 위장 쪽 수술을 하신 적이 있는데 그때도 어김없이 내장 지방 때문에 수술이 어려웠다는 말을 들었으니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식탐을 줄이려고 합니다. 가능하다면 소식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맛있는 첫 입을 음미하며 양보다는 미각에 치중하는 식습관을 가지기를 희망합니다.
누구에게나 단점이 존재한다.
옆 병상의 보호자 아주머니는 참 좋은 분이셨습니다. 잘 거동을 못하는 다른 환자들이 먹은 빈 식판을 치워주시고 그 밖에도 많은 도움을 주셨죠. 하지만 그런 분에게도 한 가지 단점이 존재했습니다. 엄청난 코골이라는 것입니다. 병실 밖의 사람이 들어와서 주의를 시킬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죠. 왜 하필 단점이 코골이란 말인가! 밤마다 잠들기 힘든 고통은 또 다른 어려움이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분만 아니었으면 당장 간호사들에게 불만은 토로했을 텐데.. 그분의 코골이를 들으면서 역시 완벽한 사람은 없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반전은 그분이 결국 다른 곳에서 잠을 청하셨는데 코골이 소리는 없어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코를 고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저도 한 코골이를 하거든요. 그분이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일찍 잠이 드셨다는 것뿐.
에필로그
수술실로 들어가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동안 내 생각을 글로 남겨놨다는 것이 저를 안도하게 만들더군요. 그 글들 중에는 유서도 있습니다. (브런치 글 : 즐거운 유서 쓰기 ) 갑작스럽게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남겨진 사람들은 무척 당황스럽고 황당하겠죠. 유서는 나로 인한 혼란을 그나마 조금은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유서가 아니더라도 나의 생각을 담은 글들은 그 무엇보다도 내가 세상에 남길 수 있는 최선의 유산이 될 것입니다. 나를 아는 사람도 나를 모르는 사람도 나의 글을 읽는 순간 저의 삶의 시공간 속으로 들어오겠죠. 이 무한한 시공간에 저를 새길수 있는 것은 저의 글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