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장 그리고 이야기 하나
(영화 라붐 시리즈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라붐”이란 영화가 왜 인기였을까요? 물론 “소피 마르소”라는 배우 때문이었겠죠. 영화 속 주인공 “빅”은 소피 마르소 그 자체였습니다. 라붐으로 데뷔한 소피 마르소의 나이는 15살 정도였을 겁니다. 기존의 배우들과는 다른 신선하고 상큼한 매력은 세상을 점령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존재 하나로만 라붐의 인기를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하이틴” 문화라는 것이 있었거든요.
영화 “라붐” 1편의 대한민국 정식 개봉은 현지 개봉 시점보다 한참 뒤였습니다. 그러나 청소년들 에게는 국내 개봉 시점과는 무관하게 소피 마르소의 인기는 이미 널리 퍼져있었죠. 지금 같은 인터넷도 없었던 시절이었는데 참 놀라운 현상이었습니다. 특정 집단의 문화 현상은 참으로 무섭습니다. 그 당시의 학생 문화, “하이틴 문화”는 최고였습니다. 그 찬란했던 하이틴 문화, 하이틴 영화들은 다 어디 갔습니까?
특정 집단의 놀라운 문화는 역설적이게도 억압과 탄압으로 탄생합니다. 지금은 시대에 변하지 않고 뒤떨어진 정신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80년대 대학생들이 주도했던 운동권 문화도 한동안 대한민국의 정신이었습니다. 역시 억압과 탄압을 뚫고 탄생한 문화였습니다. 하이틴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중, 고등학생들의 가장 암울했던 시대였던 그때, 가장 찬란한 그들의 문화가 있었습니다. 하이틴 문화가 정말 빛나던 때였죠.
물론 지금 청소년들이 편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청소년들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힘듭니다. 청소년기의 특징 중 하나가 너무 힘이 든다는 것이죠. 그러나 그 힘들다는 것은 정신적인 것입니다. 물질적인 조건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릅니다. 그 물질적인 다름이 문화를 결정하는 또 다른 요인일 겁니다. 학교에서 선생들의 폭력이 밥 먹듯 일어나던 시대의 물리적 상황, 머리를 박박 깎였어야 되었고, 학교에 도시락 3개를 가지고 다니며 하루 종일 학교에 매여있었던 그 시절의 물리적 조건들, 학생들끼리 돈을 뺏고 뺏기던 게 당연했던 물리적 상황들의 암담함. 그리고 청소년들의 눈에도 한심해 보였던 대한민국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들. 그런 모든 것들 속에서 피어났던 게 “하이틴 문화”입니다. 불법 서적이나 비디오 등을 돌려보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분명 빛나는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터질 것 같은 청소년들의 억눌린 마음은 몇몇 하이틴 영화에서 폭발합니다. 성적으로 눈을 뜨는 시기, 그러나 그 당시의 우리들에게 성적 억압은 가장 심했었습니다. 그런데 외국 하이틴 영화들이 그때 전면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성적 표출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야한 코드가 모두 담겨 있었습니다. “브룩 쉴즈”의 “푸른 산호초”, “피비 케이츠”의 “파라다이스” 그리고 “소피 마르소”의 “라붐”도 마찬가지였죠.
영화 “라붐”속의 프랑스 아이들은 어른의 행동을 합니다. 그것을 사회가 어느 정도 인정합니다. 그 당시 청소년들은 몰랐을 겁니다. 라붐의 주인공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린 나이였다는 것을요. 알았다면 더 심한 현타가 왔을 겁니다. 고3이 되었는데도 어른 대접은커녕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스크린 속의 그들은 우리가 하고 싶던 어른 놀이를 합니다. 특히 사랑을 하죠 그것도 어른이 행하는 사랑을..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은 변했고 하이틴 문화는 사라졌습니다. 당연히 하이틴 영화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이틴 문화, 하이틴 영화는 유치합니다. 영화 라붐 역시 솔직히 뛰어난 작품은 아닙니다. 내용도 별것 없죠. 그러나 하이틴 영화, 문화는 세련되었다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완벽한 품질은 하이틴 문화의 덕목이 아닙니다. 설명할 수 없는 매력과 광기가 그들을 열광하게 합니다.
가끔 청소년 드라마나 영화들이 지금도 나오기는 합니다. 그러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청소년들로부터 외면을 받으니 지속될 수 없죠.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70, 80년대의 문법과 감성으로 만들었으니까요. 교육제도가 변하지 않았고, 입시에 시달리는 청춘들의 상황은 여전하지만 그때의 그들과 지금의 그들은 다릅니다. 친구들과의 우정, 어려운 가정환경을 극복하는 모습, 불량학생이 마음을 잡고 공부하게 된다는 이야기, 풋풋하고 동화 같은 사랑.. 이런 하이틴 콘텐츠가 지금 통할까요? 중요한 것은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유효한, 청소년들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문화가 핵심입니다. 그 당시 우리는 우리만의 하이틴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어떤 용어로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청소년들의 문화가 분명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문화 특성상 기성세대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죠. 기성세대들의 고정관념으로 문화를 주입할 수 없습니다.
그 당시 청청 패션을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또다시 청청 패션의 시대가 오겠죠. 옛날 영화를 보다 보면 정말 패션은 돌고 도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영화 "유 콜 잇 러브"는 마치 라붐의 3편과도 같은 영화입니다. 라붐의 주인공이 대학생이 된 모습을 그린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소피 마르소의 미모가 절정이었던 영화로 기억합니다.
세대 간의 단절과 갈등이 어느 때보다 심하다고 합니다. 이 문제는 어느 시대에나 똑같을 겁니다. 어린 세대와 기성세대의 생각이 같을 수 없으니까요. 아니, 같아서는 안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이틴 문화가 활발했던 그때, 하이틴 영화를 보면서 기성세대들은 욕을 할지언정 어린 세대들의 생각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린 세대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까? 그들의 문화를 찾아가기가 어렵고 까다롭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을 온전히 담은 영화 한 편 보기 힘듭니다. 지금의 하이틴을 위한 영화들을 기다립니다. 어느덧 기성세대가 되었지만 언제나 세상을 뒤집고 싶은 그 시절의 욕망은 지금도 저에게 남아있습니다. 지금 하이틴들도 그러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