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여행으로 만드는 그림
저는 그림 그리기에 정해진 룰이 있습니다. 집 안에서는 디지털(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고 집 밖에서는 아날로그(펜 드로잉)로 그린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있냐고요? 디지털 장비를 들고나가기가 귀찮고 무겁기 때문입니다. 작은 필통과 조그만 드로잉북 하나는 정말 가볍습니다. 쉽게 들고나갈 수 있죠. 그렇다면 집안에서는 왜 아날로그 그림을 그리지 않는가? 집 밖에서는 아날로그만, 집 안에서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병행한다면 디지털 그림의 연습 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을 우려해서입니다. 그런데 집 밖에 나가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했었네요.
대한민국을 황사가 덮쳤습니다. 2023년 4월 11일 12일 13일이 있던 주에 황사와 미세먼지는 바깥활동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최악이었습니다. 공식적인 경보와 주의보가 발령이 되기도 했었죠. 거의 한주를 집 밖에 못 나가다 보니 아날로그 펜 드로잉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이 세운 원칙을 지키는 것이 좋겠지만 이럴 때 유연함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했습니다. 그래서 집 안에 있지만 종이와 펜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원칙을 지키고자 베란다로 나가 창 밖의 풍경을 그렸습니다.
황사는 지나가고 미세먼지는 조금씩 좋아져서 산책을 나가게 되었고 그림도 그렸습니다. 산책하고 싶을 때 집 밖을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인 줄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