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교육
우리가 좋은 습관을 들이지 못한 이유 중에는 지난 시절 무지한 교육도 크게 한몫했다. 일기 쓰기가 아마도 가장 크게 피해를 입은 희생자일 것이다.
그 당시 일기에 대한 기성세대들의 인식은 무지를 넘어 폭력적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기를 낱낱이 읽어서 검사하는 방식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일기를 쓰는 인구를 대폭 감소시킨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잘 모르겠는데, 그때는 일기 쓰기가 숙제였다. 숙제라 함은 당연히 검사를 받아야 했고 우열을 가려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어떤 일기가 잘 쓴 일기란 말인가?!
선생이란 사람들, 아니 그 당시 어른이란 사람들은 일기라는 것에 대해 조금의 이해도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을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일기를 제일 처음으로 꼽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내 일기를 대놓고 검사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제대로 일기라는 것을 쓸 수 있다는 말인가?!
더 놀라운 것은 부모들도 나의 일기를 당당히 훔쳐보았다. 내가 꼭꼭 감추었더니 일기를 왜 감춰두냐며 오히려 화를 내는 것이었다.
이러니 어떻게 일기란 것에 흥미가 생기고 좋은 경험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숙제였기에 일기는 써야만 했다. 그래서 일기에는 남이 봐도 되는 것들만 쓰였다. 놀라운 것은 일어나지도 않은 착한 일들을 지어서 쓰는 소설로 변질되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대부분의 다른 친구들도 비슷했다는 것이다. 일기의 내용이 천편일률적으로 같아지는 놀라운 기적을 보이는 순간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더 이상 일기가 숙제가 아니게 된 첫 해에 나는 환호를 지르며 일기장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동안 그렇게 오래 했던 일기 쓰기 교육은 일기를 혐오하는 계기가 되어 다시는 일기를 쓰지 않게 만든다.
일기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게 된 것은 한 영화에서였다. 지금 기억으로는 그 유명한 “안네의 일기”였던 것 같은데.. 대사 중 이런 말이 나온다. “너는 참 좋겠다. 일기 속에 너의 역사가 있으니 말이야..”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의미의 대사였다. 안네의 일기 책에도 나오는 구절인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이 대사를 듣고 눈이 번쩍 뜨였고, 곧 지난 시절 일기 교육에 대한 원망이 나를 부들부들 떨게 했다.
그 당시 제대로 된 일기 교육으로 내가 일기를 꾸준히 썼다면 나의 역사를 펼쳐 볼 수 있는 소중한 보물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이것을 깨달은 것이 거의 고등학교 졸업 때쯤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을 위한다는 이유로 우리는 아이들의 사생활을 무시하고 침해한다. 지난 시절 학교 교육에서 학생들의 사생활은 존재하지 않았다. 개성이란 존재할 수 없는 덕목이었다.
혹시 내 아이가 걱정이 되어서 일기를 훔쳐보는 부모가 있다면 제발 그러지 말기를 간청한다. 그런 행동은 오히려 부모를 혐오하게 만든다. 아이들은 부모가 내 일기를 훔쳐보는지 다 알고 있다. 적어도 일기를 훔쳐본 것이 아이에게 들켰다면 적반하장 격으로 당당해하지 말고 사과해야 한다. 정말 잘못한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