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장, 영화 이야기
(영화 "늑대와 춤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난 글, "서부 영화 - Part 1. 낭만의 시대"의 말미에 "수정주의 서부극"에 대해서 예고를 했었습니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할리우드가 돌아본 서부시대에 대한 반성과 재해석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서부 영화는 미국이란 나라의 정체성과 당위성을 노골적인 화법으로 그려낸 필름입니다. 미국의 근간을 떠받치는 프런티어 정신을 옹호하고 아메리칸드림을 설파하는 것이 서부 영화의 제1덕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미화해도 용납될 수 없는 사실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핵심은 "아메리칸 원주민"에 대한 편견과 사실 왜곡이었죠.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한 영화 "작은 거인"이 제가 본 첫 수정주의 서부극인 것 같습니다. 그 후에도 아메리칸 원주민을 제대로 다룬 서부 영화들이 많이 나왔었죠. 그 정점에 서있는 영화가 "늑대와 춤을 (Dances with Wolves)"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엄밀히 따지면 영화 "늑대와 춤을"도 불편한 관점이 숨어있는 영화입니다. 백인 남자 주인공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굳이 여자 주인공까지 백인일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아쉬움이 듭니다. 아쉬운 점이 적지 않지만, 수정주의 서부극과 대중성을 이처럼 잘 버무린 작품이 또 있을까요?
영화 "늑대와 춤을"의 남자 주인공은 이렇게 말하면서 서부로 떠납니다. "서부가 사라지기 전에 서부를 보고 싶다." 서부가 사라진다는 말은 아마도 주인공이 늑대를 길들이는 모습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겁니다. 거친 야생의 서부를 백인이 길들였습니다. 찬란한 원주민의 역사는 사라지고 길들여진 문명만 남았죠.
서부 영화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늑대와 춤을"을 중심으로 수정주의 서부극을 이야기해 봤습니다. 그 밖의 서부 영화들 중에서도 수정주의 서부극을 대변하는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명작이죠.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다른 영화로 서부 영화 세 번째 편에 나올 예정입니다. 다음 이야기는 수정주의 서부극을 넘어 서부극의 지금, 현재를 살펴보려고 합니다.